시도하는 인생은 지루해지지 않지. 머지않은 그날엔 할리데이비슨으로
뜬금없이 주위에 자전거 배우기 바람이 불었다. 40대 중후반 여자들 셋이서 작심한 듯 자전거 선생님을 알아보더니 매 주말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5회 수업료가 꽤나 비쌌다. 몰랐다. 자전거 레슨이 있다는 것을...5회, 10시간 동안 배울 내용이 있던가? 무릇 자전거는 어린 시절, 엄마아빠, 언니오빠 혹은 친구들과 어울려 잡아주고 밀어주고 넘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게 배우지 못하면 이 생에서는 그냥 자전거 못 타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친구와 함께 숙제를 끝내고 놀이거리를 찾아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중이었다. 같은 반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쓱 지나갔다. 반가운 마음에 총총 따라 달렸다. 고맙게도 그 친구는 한번 타 보라며 제 자전거에 나를 앉혔다. 비틀대는 자전거 핸들과 안장 뒤쪽을 잡고 살살 밀어주었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페달에 종아리가 긁히고 엉망진창이 됐지만 조금만 더 비틀거리다 보면 혼자서 페달에 양발을 올리고 바퀴를 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이 났다. 뭔가 속도를 내며 달리는 탈 것을 내가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 20분 정도 제 자전거를 태워주던 친구가 이제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를 하나 빌려 오늘 중으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어린이가 되어보라고 했다. 자전거를 빌리고 1시간 여 뒤에 나는 혼자서 페달을 밟고, 비틀비틀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얕은 내리막에서도 나도 모르게 거북목이 되었지만, 차차 약간의 속도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해가 졌고, 자전거 대여 시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엄마가 찾으러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 유독 부모님의 다툼이 잦았다. 특히 주말에 이런저런 대화 끝에 집안에 냉기가 감도는 날이 종종 있었고, 그런 날이면 언니는 친구 집으로 사라졌고 난 자전거 가게로 달려갔다. 혼자서 자전거를 빌려 한적한 골목길을 찾아 슬슬 속도를 내며 달렸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날렸고, 옷이 팔락거렸다. 바람이 볼을 스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갑자기 내가 쑥 자란 것 같았고, 부모님의 불화에 움츠러든 어린 시절쯤이야 별 일 아닌 듯 여겨졌다. 그것도 지나가는 한 때다 여겨졌다. 자전거를 꽤 탈 줄 아는 어린이가 되어 허파에 바람을 잔뜩 품은 채 어둑해져서야 집에 들어갔다. 막내딸이 혼자서 자전거를 타러 다닌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심한 단속 때문에 자전거 타기도 곧 뜸해졌다. 부모님의 다툼도 잦아들어, 누구랑 살아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도 접어 두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자전거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시시때때로 자전거 못 타는 사람을 살짝 무시하며 살아왔다.
한 달여 수업을 받은 40대 여자 세 명 중 한 명은 자전거 타기에 아주 소질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다른 한 명은 자전거 타기를 아주 즐기게 되었고, 나머지 한 명은 아직 자전거에만 올라타면 길 위의 모든 움직이는 것들이 마구 돌진해올 것만 같은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이 세 명의 여자는 뒤늦게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말랑말랑하던 어린 시절에 배워 두지 않으면 몸에 익히기 어려운 자전거 타기를 50을 코앞에 두고 배워낸 것이다. 그들이 자전거를 못 타서 겪게 되는 불편함은 많지 않다. 불편과 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저 뒤늦게라도 하고 싶어서,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거기다 부상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역시 시도하는 인생은 지루해지지 않는다. 그들이 60이 되고 70이 되어도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동네 산책을 즐기는 멋진 할머니가 되길.
그나저나 그녀들이 자전거에 익숙해지면 바이크에도 도전해보자고 꼬드겨 봐야겠다...우선 전기자전거 자토바이로 시동을 거는 게 좋겠지. 그리고 머지않은 그날엔 할리데이비슨 타고 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