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리기 전에 시작되는 새소리에 아쉽게 눈을 떴다. 괜시리 다리를 버둥거리며 침대커버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잠시 듣다가 정신이 들었다. 맞다. 나는 오늘 아침도 낯선 홍콩섬 어느 곳에서 눈을 떴구나.
가을이 시작됐지만 여름이 여전히 남아있는 홍콩. 한낮에는 30도가 넘어 뜨거운 아메리카노보다는 아이스라떼가 더 어울리고, 해가 이르게 넘어가는 오후가 되면 새삼스레 가을이구나 싶었다.
2014년, 나는 홍콩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을 즐기는 대신 단풍이 화려하게 물드는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한국의 가을을 놓치게 됐다. 홍콩도 나름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곳이라 하지만 단풍은 볼 수가 없는 곳이다.
해가 어스름 넘어가려는 오후. 가을 바람이 살랑 불기 시작했다. 나의 랜쟈가 살짝 그리워졌다.
이런 날엔 랜쟈와 함께 센치한 노래 몇 곡을 볼륨 높여 들으며 달려줘야 하는데...
낭창하게 낭창거리는 사이 홍콩생활은 100일을 훌쩍 넘겼다.
3개월로 예정되어 있던 Regional Office 근무는 우여곡절끝에 1년으로 연장되었고, 나는 제대로 로컬 라이프를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인생에 한 번은 낯선 도시에서 짧게 기약된 이방인으로 살아본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하루 24시간 중간 중간에 느닷없이 마주하게 되는 낯섦과 그 와중에 발견하는 반가운 익숙함.
그렇게 흥미진진하던 나날들이 어느 덧 평범한 일상이 되었고, 어느날 문득 그 일상의 결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사람사는 동네 어디나 다 비슷하다'를 모토로 겁없이 쏘다니고 살았지만, 편하고 익숙해지려는 욕심에 정작 그 낯섦과 색다름이 주는 더 흥미진진한 얘기를 많이도 놓치고 말았다. 이 자그마한 도시에 수 백만가지의 길이 있고, 그 길을 만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심상치 않은 일상이 녹아있는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내 옆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살포시 발 담그고 100일 정도 있다가 돌아갈 예정이었던 내 홍콩생활은 처음 두달은 낯설고, 불편하고, 조금은 외롭고...홍콩은 역시 그냥 그런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홍콩과 나 사이 낯가림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홍콩이 가진 매력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홍콩산책을 제대로 시작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