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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메리카노처럼

적당한 밸런스를 찾느라 평생을 허비하는 게 인간이 아닐까.

by 월하시정


나는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메리카노는 인생과 닮았다.'

너무 흔해서 존재감이 없지만,

없으면 허전하다.


첫 모금은 쓰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결국엔 중독된다.

가끔은 너무 연하게 타면 실망스럽고,

너무 진하면 속이 쓰리다.


적당한 밸런스를 찾느라

평생을 허비하는 게 인간이 아닐까.

1. "무통장 입금"의 비밀

어제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먹다가 알바생이 나에게 말했다.

"현금 영수증 필요하세요?"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

'아니, 나는 현금도 없는데 영수증은 왜 줘...'

요즘 같은 시대에 현금을 쓰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할머니 아니면 도둑.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무통장 입금"이라는 단어다. 통장도 없는데 어떻게 입금이 가능할까? 차라리 "무(無)통장 출금"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통장 잔고가 제로(?)인 내 계좌를 보며 매일 이 말을 실감한다.

2. SNS 시대의 기묘한 예절

요즘은 친구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신문 사망란보다 늦게 알게 된다. 하루 종일 SNS를 해도 왜인지 중요한 소식만 알고 싶을 때는 안 보인다.

알고 보니 결혼식 청첩장은 "알고리즘"이 막아버리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더 웃긴 건 반응이다.

옛날에는 결혼식 가서 "축하해!"라고 말했다면, 이제는 "인스타에 올라온 네 결혼사진에 댓글 달았어!"라고 말한다. 심지어 장례식에서도 조의금을 현금으로 건네면 어색해진 시대다.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페이팔로 보내드릴게요"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3. 헬스장의 진실

헬스장에 가면 항상 의문이 든다. 왜 운동 기구들은 전부 영어 이름일까? '레그 프레스', '랫 풀다운', '체스트 플라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리 누르기', '등 당기기', '가슴 날리기'인데, 왜 이렇게 허무해 보일까?

사실 헬스장은 거울을 많이 놓아둔 미술관이다.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허우대를 확인하며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30분 운동하고 1시간 셀카 찍는 게 진정한 헬스의 완성이다.

4. 스마트폰 없는 시대를 상상해보라

과거에는 길을 잃으면 지도를 펴거나 사람에게 물어봤다. 지금은 네비게이션에 목숨을 건다. "500미터 직진 후 우회전"이라는 목소리가 안 나오면 아예 움직이지 못한다. 만약 내비게이션에 "당신 인생 잘못 돌아갔어요"라고 뜨면 어떻게 반응할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기요, 공중전화 어디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대답할 것이다. "공중전화요? 그거 요즘 박물관에 있죠."

5. 어른이 된 기준

어른이 되었다는 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과일을 선물로 받아도 기쁘다.*
*100원 아끼려고 10분을 걸어서 다른 마트로 간다.*
*"이따 전화할게"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안다.*
*비 오는 날, 빨래 널어둔 걸 깨달았을 때의 충격을 이해한다.*

그리고 진정한 어른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할 때, 당당하게 "따뜻한 걸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맺음말 : 인생은 원두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원두의 향을 음미한다. 쓴맛 뒤에 오는 깊은 풍미를 즐기기 위해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이건 원두 갈리는 소리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끝나면 커피 한 잔의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

오늘도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너무 쓰면 설탕을 타고,

너무 연하면 에스프레소를 추가한다.

그게 인생의 밸런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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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수필 #커피 #일상생각 #감성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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