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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잉크로 쓰다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한 듯하지만 정작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

by 월하시정

어둠이 내려앉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펼쳐놓고도 아무런 글씨를 쓰지 못할 때가 있다.

손가락은 잉크를 묻힌 펜을 쥔 채 공중에 멈춰 있고,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한 듯하지만

정작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순간, 침묵이 글을 쓰는 것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길 때가 있다.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무겁게 채워진 언어다.

*말이 지워진 자리에*

사람들은 종종 침묵을 불편해한다.

대화가 끊기면 무언가 말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진정한 대화는 말이 멈추는 순간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서로의 침묵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린다.

침묵은 언어가 다다를 수 없는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

"한 마디 말 없이 /
마주 앉아도 /
그대의 마음은 /
들리네. /
침묵이 흐르는 강물처럼 /
모든 것을 전하네."

이 시는 침묵이 주는 소통의 힘을 담고 있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서로의 진실이 보인다.

침묵은 가장 순수한 대화의 방식이다.

*침묵 속에 숨은 창조의 씨앗*

예술가들은 종종 침묵에서 영감을 얻는다.

고요한 아침, 캔버스 앞에 앉은 화가는

붓을 들기 전 긴 시간을 침묵으로 보낸다.

작곡가는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고 소리가 아닌 고요를 듣는다.

창조의 순간은 종종 말이 끊어지는 곳에서 시작된다.

글을 쓰는 이도 마찬가지다.

가장 절실한 이야기는 종종 침묵 속에 갇힌다.

그것을 끄집어내려면 먼저

침묵을 경험해야 한다.

빈 종이를 마주할 때의 그 막막함,

머릿속이 하얗게 타오르는 순간

—그것이 진정한 글이 태어나는 통로다.

말을 잃은 밤 /
잉크는 더 깊게 스며든다 /

종이 위에 피어나는 /
무언의 꽃.

*침묵의 지혜, 고요의 철학*

동양의 선(禪) 수행자들은 말을 덜어내는 훈련을 한다.

"말하지 않음"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서양의 철학자들도 침묵의 가치를 탐구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언어는 한계가 있지만,

침묵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가진다.

우리가 진실을 마주할 때,
종종 말문이 막힌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을 때, 깊은 감동에 휩싸였을 때—우리는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그것이 가장 정직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침묵으로 쓰는 인생의 글씨*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종종 말보다 침묵으로 기억된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 속에서 들었던 무언의 위로,
오랜 친구와 나눈 말 없는 눈빛,
홀로 바다를 바라보며 느꼈던 고요한 깨달음—이 모든 것들은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것들이다.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풍요로운 소리다.

눈 내리는 숲속의 고요, 새벽녘의 정적, 사랑하는 이의 숨소리—이 모든 것들은 침묵의 잉크로 쓰인 시와 같다.

우리는 종종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

*침묵의 문장을 읽는 법*

그러면 어떻게 침묵의 언어를 읽을 수 있을까?

먼저,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진정으로 듣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그 사이의 침묵을 포착하는 것이다.

예술가처럼, 연인처럼, 수행자처럼—고요함 속에 숨은 메시지를 발견하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별빛은 더 선명해지듯, 침묵이 깊을수록 마음의 소리는 더 분명해진다.

이제 펜을 내려놓으려 한다.
이 글이 끝나는 순간,
진짜 글은 비로소 시작될 테니

—침묵의 잉크로 쓰인,
말로 다할 수 없는 무언의 문장들이.



#수필 #침묵 #고요 #창조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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