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기억들.
신촌에서 사당행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펼쳐지는 야경을 창밖으로 바라보던 기억이 좋아질 무렵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한 낮에 생중계되던 그 장면은 그해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이 예고치 않게 찾아온 일들이었고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달려왔던 한국사회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30년 전에 이미 예고편으로 드러난 구조적 문제는 아직도 한국사회 곳곳에서 잊을만하면 터져나오고 있으니 반세기를 이룬 한강의 기적에 숨어있는 부작용들을 지금에서야 우리는 체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지하철 2호선이 끊기면서 한동안 나는 신촌을 가지 못했다. 재수 동기들이 신촌에 더 많기도 했고 신촌이 그 무렵에는 지금의 건대나 홍대같이 젋은이들의 아지트였기에 우리는 자주 신촌에서 모였다. 우리는 그 즈음 달과 6펜스라는 술집과 술익는 마을이란 막걸리집에 자주 갔었는데 아방가르드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신촌의 모던한 분위기를 잘 살린 곳이라 밤에 가기 더욱 운치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청춘의 많은 기억들은 공권력이란 개념이 실체화되어 나타났던 시위의 순간들에 머물러 있다. 94년 철도 지하철 노조 파업, 95년 한국통신 파업때는 강의실에 들어가 강의 시작하기 전 노동자들이 처한 부당한 처사를 알리면서 파업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같은 내용을 지하철에서 유인물로 나눠주면서 비슷한 내용으로 승객들에게 호소하기도 했었다. 94년 당시 3호선 수서역은 차량기지가 있었고 이곳에서 철도 지하철 노조의 집회가 빈번하여 나 역시도 이곳에 가서 밤새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서 공권력의 침탈로부터 노조원들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했던 기억도 나고,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하던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명동성당 외곽에서 시위를 하며 경찰들이 이들을 강제해산하지 못하도록 결사대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또한 lg쌍동이 빌딩안 본사에서 농성하던 노동자들이 이들을 쫓아내려 회사에서 조직한 소위 구사대와 맞서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신도림을 거쳐 대림을 지나 여의도에서 밤새 시위를 하다가 새벽녘에 걸어서 집에 오고 난 후에는 너무나 힘들어서 그 다음날 뻗어서 자느라 이산수학 중간고사를 아예 결시를 한 적도 있었다.
사실 삶의 명확한 목표나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찍부터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동기 몇몇은 학점관리를 하면서 학생회일에는 거리를 두었으며 선배들이 사주겠다는 술자리도 참석하지 않아 그 친구들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이야기를 해 볼 기회는 없었다. 자라온 환경이 크게 다른 탓도 물론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잘 하는지 알고 있었고 위험한 상황에 자신이 처하는 것이 자신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을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민주화 항쟁이후 군인이 아닌 첫 민간인 대통령이던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적지 않은 청춘들은 스스로를 불살라 사회에 만연한 모순을 고발하였고 노동자들의 단결체인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쫓아가던 정부와 재벌자본의 결합에 대항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가던 시기인지라 사회는 전혀 순탄치 않았다. 이런 현실들에 이해당사자도 아니면서 약자편을 들겠다면서 투사로 나서던 운동권들은 과연 북한이 내려보낸 간첩들에 의해 포섭되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범자들이었을까? 소설가 김영하가 지은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는 소위 학생운동권이었던 저자가 젊은 시절 겪었던 체험담이 펼쳐지는데 형사들이 그를 잡기 위해 집을 지키고 있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딘가에서 숨어지내던 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옷가지를 가지러 가기 위해 집에 들렀다가 형사들에게 붙잡혀 유치장에 있을 때 담당 지구대의 보안과장과 연락해서 국가보안법위반이 아닌 혐의로 빼돌려지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처럼 그 90년대 중반의 한국사회는 아직도 학생들을 잡아다가 보안법위반 혐의나 집시법 위반으로 실적을 올리려는 공안검사와 형사들이 '공안몰이'를 하던 때였고 재수가 없으면 재판에 넘겨져 빨간줄이 그일 수 있던 사회였다.
96년도 3학년이 되면서 난 조금씩 '운동'에서 멀어져갔다. 노동자도 아니면서 자본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투사로 살아가기에는 정체성이 맞지 않았고 젊음의 혈기로 순수한 마음에 깃발을 들고 나섰지만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대립하는 현실 세계가 탐구대상인 법대, 사회대, 인문대 학생들처럼 끝까지 세계를 해석하는 일에 매달리기에도 어중간했다. 실은 나의 관심사가 우리나라의 사회적 정치적 모순에서 수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학문적 탐구로 다시 되돌아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삶에 대한 통제력-나의 동기들 중 몇몇이 어릴 때부터 습득했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때 생기는 힘이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인가를 찾는 그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집중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나는 내가 참가한 수많은 시위에서 그런 성취를 찾지는 못했다. 최루탄이 터지면 눈물 콧물을 참지 못해 눈이 따가워 뒤로 물러섰으며 제법 빠른 몸놀림 덕분에 전경들이 쫓아와도 잡히지 않아서 한 번도 유치장에 가지는 않았었지만 그런 일들이 나를 단련시켰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법과 제도가 규정한 사회의 경계에 다가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고 그러한 경계위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내가 바친 시간들에서 얻는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