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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트, 원산에서 사역하며 경건한 삶으로 모범

용정 및 블라디보스톡까지 복음 전한 선교사

by 신재천

윌리엄 푸트 선교사(부두일, 1969~1930)는 원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특히 용정 등 북간도 지역에 선교 지부를 개척한 선교사이다. 복음주의적 문서 선교에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출생하여 아케이티아 대학을 거쳐 1898년 할리팍스의 파인힐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1898년 9월 부인과 함께 캐나다 장로교 정식 선교사로는 입국하였다. 소래에서 순교한 매켄지 선교사의 영향으로 정식으로 파견된 캐나다 최초 5인 선교사 중 한 사람이다.


1899년 11월 원산의 선교사업을 캐나다 장로교가 맡도록 결정되었다. 그래서 그는 원산으로 이주하여 원산 선교부를 설치하고 원산 중앙 교회와 원산 보광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함경 남북도와 강원도 지역을 대상으로 순회 전도를 실시하고 중국 지역인 용정까지 선교 지역을 확대하였다.

1914년 용정 선교부를 개설하고 이곳으로 이주한 한국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1922년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한국인 목사 최관홀 등과 함께 복음을 전하였다. 블라디보스톡은 1923년 러시아 정부의 압력으로 부득이 원산으로 철수하기도 했다. 그는 평양으로 돌아와서 1925년부터 평양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여 요한 낙스전 및 세계 선교운동 등에 대한 책을 번역하였고, 1910년 The Korean Mission Field에 여러 글을 기고하였다. 특히 1918년 이후에는 <신학지남>에 선교 인물 이야기 및 신학 역사 이야기를 다수 기고하였다.


기고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한국 선교를 진지하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경건한 삶을 살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낼 것이지 숙고한 내용이 많이 있다. 특히 <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 가운데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낼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으로 3가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1) 소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 2)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 명백히 이해 3) 메시지의 목적과, 효과적 전달 방법 및 확신 있는 전달을 강조한다.


1930년 6월 호 The Koeran Mission Field에 기고한 윌리엄 스콧의 <푸트 선교사에 대한 회고의 글>에서 푸트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감동한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로서 사역하면서 성경공부를 실시하고, 교회를 세우고, 1개 이상의 학교를 설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928년 딸의 병으로 인해 캐나다로 귀국하였고, 1930년 3월 61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소천하였다. 자녀는 1남 3녀를 두었는데 장녀인 진 푸트(Jean Foote)가 1922년 2대째 내한하여 평양 외국인학교 교사로 5년간 재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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