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브루엔, 대구 및 경북 서부에 복음 전도
대구 개척 선교사 3인방 중에 한 사람
헨리 브루엔 선교사(부해리, 1874 ~ 1959)는 대구 지역 개척 선교사 3인방 중에 한 사람이다. 대구 남산교회를 개척하고, 경북 서부 지역에서 42년간 복음을 전하면서 55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부인 마르다 선교사는 대구 최초 여학교인 신명여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는 1874년 미국 뉴저지에서 목사의 자녀로 출생했다. 1896년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1899년 유니언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 받았다. 그는 학생 시절 무디의 학생 자원 운동(SVM)에 참여한 후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선교지로 한국을 선정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었다. 선교지를 결정하는 시기에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존슨 선교사가 생각이 나서, 존슨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때마침 존슨도 대구에 사역할 동역자로 브루엔이 생각이 나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두 편지가 동일한 날자에 배달이 된 것이다. 이 상황을 듣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감동한 브루엔은 주저 없이 대구행 선교사로 지원한 것이다.
그는 1899년 9월 북 장로교 선교사로 서울에 도착하였다. 25세의 청년은 머나먼 이국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는 곧바로 존슨이 사역하는 대구 선교부에 부임했다. 당시 마르다와 약혼하였으나 혼자서 먼저 왔고, 약혼녀 마르다는 3년 후 한국에 왔다.
그는 대구에 도착한 후 처음에는 존슨의 의료사역을 보조하였다. 그리고 1901년부터 경북 서부 지역을 순회 전도하며 복음을 전했다. 김천 21개 교회, 선산 10개 교회, 달성 7개 교회, 칠곡 5개 교회, 상주 5개 교회, 성주 3개 교회, 고령 3개 교회, 군위 1개 교회 등 55개 교회를 설립하였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전도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 그가 개척한 교회 중에는 필자의 고향인 경북 달성군에도 7개 교회(본리, 신당리, 하동, 대명, 성당동 신천, 우산)를 설립하였다.
1903년 아담스의 후임으로 대구 제일교회 2대 담임 목사로 시무했고, 1904년에는 대구 성경학원을 맡아서 운영했다. 그리고 1913년 12월에는 경상 노회장으로 활동했다. 1915년에는 대구 제일교회에서 대구 남산교회를 분리 개척하였고, 1920년까지 담임 목사로 헌신하였다.
그는 한센병 선교위원이 되어 한센병 환자를 돕기로 하고, 1917년부터 나환자 요양소 부지를 확보하고 병동과 예배당을 짓고 구제사업을 펼쳐 나갔다. 나환자 선교위원으로는 어빈, 빈튼 그리고 브루엔이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1900년 3월 대구에 야구를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루엔 부인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야구 방망이와 공으로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다. 대구에서 경북고, 대구상고 등 고교 야구의 명문이 많이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 후 1941년 브루엔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 땅을 떠나 필리핀으로 갔다. 그리고 1944년 선교사 사역을 은퇴하고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루즈에서 거주하다가 1959년 3월 84세로 별세하였다.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하였고, 한번 만난 사람은 얼굴을 메모하여 잘 기억하였다. 또한 성품이 온화하여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고, 한국인을 대할 때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따뜻한 선교사였다고 주변 사람들은 회고한다.
그의 선교 이야기는 두 번째 부인 클라라 헤드버그에 의해 2014년 책으로 출간하였다. 제목은 <아 대구! 브루엔 선교사의 한국생활 40년>이고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인 마르다 브루엔(부마태, 1875~1930)은 1902년 2월 결혼하고 그해 5월 한국으로 왔다. 그녀는 대구 선교부 내 주택에서 소녀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1907년 10월 대구 최초 여성 학교인 신명 여학교로 발전하였다. 그녀는 신명 여학교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또한 1916년 남산교회 부인 주일학교와 농촌교회 여 전도회를 조직하고, 부인 사경회를 인도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30년 10월 유방암으로 5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는 28년간 헌신한 대구를 뒤로하고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구내 《은혜의 동산》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매우 탁월한 여성이었으며 우애가 있는 가정을 만들고 이웃과 사회에서 인간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고 동료들은 추모했다.
브루엔은 마르다와 사별 후 1934년 부인의 친구인 동산 의료원 간호사인 클라라 헤드버그와 재혼하였다. 클라라는 브루엔의 유고를 정리하면서 편지 등 그의 기록을 정리하여 후에 책으로 출판하였다. 그녀는 1941년 브루엔이 이 땅을 떠날 때 함께 떠났다.
* 클라라(하복음)는 1923년 내한하여 동산의료원에서 18년간 간호사로 헌신하였다. 그녀는 간호 책임자로 근무 중 병원 내 간호부 양성소를 설립하여 많은 간호사를 양성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