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어, 개성에 선교부를 구축한 선교사
개성 남부 교회 및 문산교회 설립
찰스 콜리어 선교사(고영복, 1868~1944)는 남 감리회 초기 선교사로 개성에서 22년 사역하면서 개성 복음화의 초석을 다진 선교사이다.
그는 1868년 영국 트위큰햄 온 테임즈에서 태어나서 반더빌트 대학교를 졸업했다. 1895년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대영성서공회 선교사가 되어 상해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상해에서 활동 중 남 감리회 스미디 선교사와 결혼하고 소속을 남 감리회로 변경하였다.
그는 1897년 1월 한국 선교사가 되어 상해에서 서울로 이동했고, 부인과 아들은 5개월 후 윤치호와 함께 입국하였다. 그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며 1897년 11월 개성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개성 초대 선교사 리드는 콜리어에게 개성 지역을 인계하고, 서울 지역을 맡았다.
1898년 전도인 김흥순과 함께 개성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개성 시내에 최초 교회인 개성 남부 교회, 문산 교회를 개척하였고, 활해도 평산군에 남천 교회 등을 개척하였다.
그리고 윤치호의 친척 도움을 받아 선교 기지를 매입하고,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준비를 하였다.
1900년에는 개성 선교부를 조직하여 강원도까지 선교 지역을 확장하였다. 1906년에는 무스가 안식년으로 자리를 비운 춘천에서 사역하였고, 1908년 서울 광희문 교회 담임을 역임하였다. 1909년에는 다시 개성으로 돌아와서 사역하였다. 이때 원주 제일 교회에도 순회 전도사로 활동하여 교회를 부흥시켰다.
1909년 2월 아들이 평양 외국인 학교에 재학 중이라서 뒷바라지하기 위해 평양에 있던 부인 스미디가 병으로 소천하는 슬픔을 겼었다. 그 후 그는 1910년 캐롤과 재혼하였다.
* 캐롤은 1899년 내한하여 개성에서 부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개성에서 최초 교육기관인 개성여학당(호수돈 여학교)을 설립한 선교사이다.
그리고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연합군을 지원할 선교사로 선발되어 1919년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그곳 YMCA의 군인 휴양소에서 봉사하였다. 또한 종전 후 체코로 가서 성경 반포 사역을 하였다.
1921년부터 미국에서 볼티모어 연회로 소속으로 목회하고 1924년부터 10년간 버지니아 주 쇼우빌에서 목회한 후 1934년 66세에 은퇴하였다. 그는 브리지워터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944년 6월 소천하여 그린우드 묘지에 안장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