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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존, 순천 알렉산더 병원 건축 재정 후원

2개월 만에 귀국하면서 한국인 오긍선을 유학시켜 의사로 양성

by 신재천

알렉산더 존 선교사(1876~1929)는 내한 2개월 만에 부친 사망으로 가업을 잇기 위해 귀국하였다. 그러나 재정을 후원하여 순천 알렉산더 병원을 설립케 한 선교사이다.


그는 미국 켄터키 주 출신으로 부친이 큰 목장을 경영하는 재벌 집안의 장남이었고, 프린스턴 대학 및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수재였다.


1902년 11월 남 장로교에서 파송받아 내한하였다. 한국 도착 후 곧바로 인천에서 배를 타고 군산으로 왔다. 그가 군산으로 오는 배에는 맥쿠젠(마로덕, 전주에서 사역)과 윌리암 불 선교사 부인과 함께였다.


* 윌리암 불은 1899년 군산 초대 전킨 선교사에 이어 부임한 군산 2대 선교사이고, 맥쿠첸은 전주 등 전북 지역에서 탁월한 전도 능력으로 100여 개 교회를 설립한 선교사이다.


그는 군산에서 두 달 거주하며 한국의 문화를 익히는 도중에 목장을 경영하는 부친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귀국하였다. 그는 장남으로서 동생과 10살 정도 차이로 어리기 때문에 당장 부친의 목장을 경영할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귀국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통역을 담당하던 오긍선을 눈여겨보았는데 특히 그의 성실성에 감탄하였다. 그래서 귀국할 때 오긍선을 켄터키로 유학하게 하였다. 오긍선은 의대로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서 피부과 및 내과 의사로서 활동하며 한국 피부과 의사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한 오긍선은 장로교 선교사 자격으로 호남 지방 의료 및 교육 선교에 헌신했다. 광주 기독병원 원장 및 목포 프랜치 병원에서 헌신했으며, 세브란스 의전에서 근무하며 2대 교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서울에 경성 고아원을 설립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에도 헌신하였다. 오긍선의 성공적 사역은 바로 알렉산더의 열매인 것이다.


그는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한국 선교를 위해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1915년 순천 알렉산더 병원 설립에 재정을 후원하여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탄생하였다.


순천 알렉산더 병원은 그의 재정 후원에 힘입어 건축 전문 선교사인 스와인하트(서로득)에 의해 건축되었다. 스와인하트 선교사는 미국 듀크 대학교의 간호 대학 건물이 그의 이름인 것을 볼 때 학교 설립에 재정을 지원하였고, 중국 선교에도 후원하여 병원을 세운 기록이 있다.


그는 1929년 우드포드에서 53세의 나이로 소천하였다. 그의 부인 케이트는 남편을 추모하여 순천 알렉산더 병원을 확장하였고,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내한하여 이 병원에 헌신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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