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커를, 진주에 최초 복음 전한 호주 의료 선교사
진주 교회 및 진주 배돈병원 설립
휴 커를 선교사(거열휴, 1871~1943)는 호주에서 파송된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서 진주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선교사이다. 진주 선교부를 개설하고 진주 교회 및 진주 베돈 병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1871년 북 아일랜드 칸라우에서 태어나서 1897년 의대를 졸업하고 내과 의사가 되었다. 아일랜드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1899년 호주로 이주하였다. 그는 호주에서 안식년 휴가 온 아담슨 선교사로부터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선교사로 지원하여 호주 장로교로부터 파송받았다.
그는 1902년 부인 에셀 엔스티(아일랜드에서 결혼한 첫 부인이 병사하여 호주에서 재혼한 부인, 10살 차이) 및 두 딸과 함께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호주 선교회에서 파송된 최초 의료 선교사로서 한국 도착 후 부산 초량 및 부산진에서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인 1905년 10월 진주로 이동했다. 진주에 선교부를 개설하고 진주 교회를 설립하여 예배를 시작했다.
1906년 커를 부인이 집에서 여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시원 여학교로 발전하였다. 그 후 광림 학교가 설립되어 남학생을 가르쳤다.
* 시원 여학교는 1907년부터 교육을 전공한 스콜스 선교사가 부임하여 체계적으로 학교를 운영하였다. 1919년 4월 스콜라 선교사가 소천하면서 그녀를 기념하여 학교 이름을 시원으로 명명하였다.
또한 커를은 집에서 한국인 조사와 함께 시약소를 열어 환자를 돌보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1914년 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배돈 병원이 시작되었다.
* 베돈은 호주 선교사 페이톤의 부인의 순직을 기념하여 병원 이름을 베돈으로 명명하였다.
진주 배돈병원 건축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장기간 소요되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건축을 완성하였다. 일본인 건설업자가 공사 중 부도를 맞았고, 공사 중 화재로 인해 건물이 큰 피해를 입는 사고도 발생하였다. 그는 어려운 외부 여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의료 사역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 후 1915년 부인의 병으로 인해 진주 사역을 후임 선교사에게 인계하고 호주로 돌아갔다. 그 후 호주 멜버른에 거주하며 인근 켄싱턴 지역에서 병원 개업을 하였으며 해외 선교를 후원했다.
그리고 1943년 3월 72세의 나이로 소천하여 멜본 박스힐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묘소 곁에는 부인과 아들 휴 다니엘, 두 딸 에델과 프랜시스, 그리고 쥬디스(에델의 딸)와 피오나(프랜시스의 딸) 등이 함께 묻혀있다.
손자 루더포드는 2015년 10월 25일 할아버지가 세운 진주교회 설립 11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하여 여러 자료들을 기증하였다. 이중 휴 커를 선교사의 여권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여권은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