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 이야기

대동강 가에서 순교한 영국 선교사

by 신재천

토마스 선교사(1839~1866)는 1863년 12월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아내 캐롤라인과 함께 중국 상해에 도착했다. 그러나 4개월 만에 아내가 유산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슬픔을 겪었다. 아내 사망 후 그는 사역지를 상해에서 옌타이로 이동하여 통역관으로 일했다. 그리고 조선을 알게 되었다.


그는 1865년 9월 13일 천주교인 김자평외 1명과 중국인 우웬타니의 배를 타고 조선을 방문했다. 배는 길목인 백령도에서 잠시 정박하였고 이때 주민에게 간단한 조선말로 복음을 전했다. 배가 정박한 곳이 황해도 자라리로서 최초 교회가 세워진 소래 지역 근처이다. 토마스는 2개월 반 동안 조선에 머물면서 쪽복음 서책과 전도지를 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4개월 만에 중국으로 되돌아간 후 북경에 거주하면서 조선인 동지사와 교제하며 조선 선교를 추진했다. 그 후 조선행 미국 상선의 통역관으로 자청하여 1866년 8월 제너럴셔우먼호를 타고 두 번째 방문했다.


배는 백령도 두문진에 잠시 정박하였고 이때 성냥, 케이크 및 성경책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며 서양 문물을 전파했다. 대동강 하류에 도착해서는 서양배를 구경하기 위해 온 주민들에게 성경책을 나누어주었다. 그 후 장사포, 석호정, 두로도(만경대 근처)에 정박 중에도 주민들에게 성경과 서양 물품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조선의 쇄국정책과 조선인 3명을 상선에 억류하는 문제로 인해 결국 관군은 배를 공격하게 된다. 대동강 뚝섬에서 정박 중 대동강 물이 썰물로 변하여 배가 움직이지 못하자 평양 군인은 화공으로 배를 불태우고 제너럴셔우먼 호의 선원 23명이 죽음을 당하였다.


토마스 선교사는 배에서 성경과 전도지를 던지고 예수님을 외쳤다. 그리고 가슴에 성경 1권을 품고 배에서 내려 강기슭에서 군인에게 칼로 가슴을 찔려 순교당했다.


중국에서 함께 사역한 동료 선교사의 편지에서 토마스 선교사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성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다.


토마스가 던진 성경책은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접하게 했다. 영문주사 박영식은 사람들이 버린 성경책을 수집하여 자기 집의 벽지로 사용하였는데 훗날 최치량이 이 집을 사서 여관으로 운영하다 벽지를 보고 회심하여 교회가 되었다. 이곳이 평양 최초의 교회인 장대현 교회 자리가 된 것이다. 당시 11세인 최치량은 숙부와 함께 대동강변에 구경 갔다가 토마스 선교사가 던진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20세 여인 이신행은 성경 한 권을 받아 읽고 최초의 여성 신도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 이덕환은 장대현교회 장로로 시무하였다.


그리고 제너럴셔우만호의 인질(이현익 등)을 구출한 박춘권은 평양의 장로교 신자가 되었다. 토마스를 죽인 군인은 그가 죽으면서 건넨 성경 책을 받아서 집으로 가져갔으며, 그의 조카 이태가 신자가 되어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 레이놀드(이눌서)를 도와 성경번역을 하게 되었다.


토마스가 최초 방문한 황해도 소래(솔내)는 1884년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소래교회가 세워졌다. 소래교회는 토마스 선교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간접적인 연관은 있다.


1872년 중국 사역을 시작한 존 로스 선교사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소식을 접하고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조선인 서상륜, 백홍준 등과 함께 한국어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 여기서 은혜받은 서상륜은 소래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서상륜의 동생 서경조는 평양신학교에서 한국 최초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시작한 곳이 되었다. 소래 교회는 맥켄지 등 선교사들이 활동하였고 많은 한국인 세례 교인이 탄생한 곳이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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