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셉 놀란, 2년 반 사역하고 금광으로 떠난 선교사
광주 기독병원 초대 원장으로 기록
조셉 놀란 선교사(노라노, 1850~?)는 광주 기독병원 초대 원장으로 2년 사역하며 광주에 최초 서양 의술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역 2년 만에 금광 회사로 이동하여 아쉬움을 남기는 선교사이다.
그는 미국 켄터키 주 크리치에서 태어나서 루이빌 의과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1904년 8월 남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한국 도착 2개월 후 10월부터 목포 선교부에서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이 6개월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졌으나, 그는 2개월 만에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사역에 상당히 열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민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위생 교육과 성경 교육을 중시하였다. 또한 환자를 치료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양반과 귀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출석하게 한 일이 그의 편지에서 나타난다. 1905년에는 프레스톤과 함께 목포 인근 산간 도서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한 기록도 남아있다.
그 후 1905년 11월 광주로 이동하였다. 오웬 선교사가 소천하여 그의 후임으로 광주로 이동한 것이다. 광주에 와서 유진 벨(배유지) 선교사의 임시 사택에서 진료소를 설치하고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당시 광주 제중원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광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다. 그는 첫날 9명의 환자를 치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조금의 약값을 지불토록 하였고, 복음을 전하여 미신이 제거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1907년 4월 갑자기 선교사 직을 사임하고 평안도에 있는 금광 회사로 떠났다. 당시 금광회사는 많은 보수를 보장하였는데 그 이유만으로 선교사 직을 사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는 총 2년 반 동안 선교사로서 사역한 것이다.
광주 제중원은 놀란이 떠난 후 윌슨 선교사가 맡아 운영하였고, 그 후 병원 규모가 확장되어서 현재 광주 기독병원이 되었다. 윌슨은 광주 기독병원 2대 원장으로 병원 발전에 기여하였고, 한센병 환자 병원과 수용시설을 갖춘 애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