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재천 Aug 31. 2024

웰번, 안동 지역 복음화에 초석이 된 선교사

이 땅에서 28년간 활동하고 양화진에 안장

아더 웰번 선교사(오월번, 1866~1928)는 경북 안동지역 복음화에 기여하고 양화진에 안장되어 있는 선교사이다.

그는 1866년 8월 미국 미시간 주에서 태어나, 1897년 맥칼스터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1900년  안셀모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선교사로 지원하여 1900년 10월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서울에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1901년 새디 선교사 (당시 대구에서 사역)를 만나 서울에서 결혼했다. 그리고 1909년까지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1907년 제1회 독노회 때 전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09년 제3회 독노회에는 경기노회 총대로 참가했다.


그 후 원주로 선교지를 이동하였으나, 예양 협정으로 원주 지역이 감리회 구역으로 조정되면서 1909년 9월 안동으로 이동하였다.


안동은 선교 초기 단계였는데 웰번 선교사가 합류하면서 사역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특히 원주에서 그와 동역하던 김영옥 조사가 안동으로 함께 오게 되어 큰 힘이 되었다.


* 김영옥 조사는 안동에서 웰번 선교사를 도우다가 1911년 평양신학교를 졸업 후 안수받았다. 경북 북부지역 최초의 한국인 목사가 되어, 안동교회 초대 목사로 시무했다.


그는 안동 선교부 주임 선교사로서 선교사 사택 건립, 안동 교회 건축에 기여하였다. 1910년 10월 안동 금곡동 산기슭에 선교 부지를 조성하고 네 채의 선교사 사택을 건축하였고, 안동교회를 약 30평 규모로 건축했다.


성도가 계속 증가하면서 1914년 2월 오백 명 규모의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현재 안동 100주년 기념관이 두 번째 예배당 위치에 건립되어 있다. 그는 한국인 사역자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1911년 가을 김영옥 목사를 안동교회 초대 목사로 만들었다.


*안동교회는 1909년 8월 안동읍에서 세워진 안동의 최초 교회이고, 복음을 수용한 한국인 성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1911년 웰번의 추대로 김영옥 목사가 초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교회는 설립 1년 만에 성도가 75명으로 성장하여 선교사 주택에서 예배드리다가 건물을 건축했다.


웰번 부부의 주된 사역은 성경 공부를 통한 제자 양육이었다. 1910년 6월에는 여자 성도를 위한 첫 번째 성경공부 모임을 가졌다. 현재 안동 지역의 교회가 말씀에 기초해 든든히 세워지는데 웰번 선교사 부부가 기여한 것이다.


그는 안동 외에도 지역 교회를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안동의 지곡 교회 및 내외 교회 그리고 소호리 교회 (1909년)에서 시무하였고, 영주 풍기 교회(1910)에도 시무했다. 1912년부터는 영양, 봉화, 순흥. 풍기, 예천, 문경, 함창, 상주,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 전역에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이 지역 동사 목사로 사역하면서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그의 성격은 과묵했고, 얼굴은 검은 수염으로 뒤 덥혀 야성적인 인상을 주었지만 동네에 우물을 파서 식수 문제를 해결하는 인정을 베풀었다. 또한 안동에 사과나무를 보급했다고 전한다.


그는 1917년 평양으로 전임되어 순회 전도와 계몽 교육에 힘쓰다가 1919년 부인 새디의 건강 악화로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1922년 다시 안동으로 돌아와 경안 노회를 위해 헌신하다가 1928년 4월 장티푸스에 걸려 61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국에서 어릴 때 사망한 장남 토마스(1903년 소천)와 딸 앨리스(1912년 소천)가 묻혀있는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복음이 척박한 안동 땅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세 번째 선교사가 되었다. -끝-


* 안동에서 순교한 첫 번째 선교사는 소텔(1908년 순교), 두 번째 선교사는 로저 윈(인노절, 1922년 순교)이다.


부인 새디 웰번은 대구 최초의 간호 선교사로서 1899년 9월 내한하였다. 1901년 9월 웰번 목사와 결혼 후 서울로 전임되어 여성 성경 반을 지도하며 순회 선교를 했다. 남편 웰번을 따라 안동에 와서 젊은 여성과 노년층 2개의 성경 반과 새 신자 성경 반을 운영하였다. 1914년 5월에는 15일간 6백여 리를 걸어서 12개 교회를 순방하고, 사백여 명을 전도한 기록이 있다.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어 1919년 미국으로 돌아갔고, 1925년 7월 테네시에서 53세로 소천하였다. -끝-

작가의 이전글 소텔, 내한 2년 만에 순직한 안동 최초 선교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