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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Sep 19. 2024

루비 캔드릭, 천 개의 목숨이라도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

내한 9개월 만에 순직한 텍사스 출신 여 선교사

루비 켄드릭 선교사(1883~1908)는 내한 9개월 만에 순직한 선교사이다. 비록 짧은 기간 이 땅에 거주하였지만 그녀의 한국 사랑의 열정은 텍사스 모교회에 전달되어 20명의 친구들이 선교사로 내한하여 한국 복음 사명을 이어갔다.

그녀는 미국 텍사스 주에서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선교의 열정이 있었고 교회 청년회 대표로 활동했다.


그녀는 1907년 9월 24세의 나이로 텍사스 남 감리회에서 파송받아 한국에 왔다. 그리고 개성 지역에 배정되어 그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아동 교육을 담당하는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녀가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름다운 조선을 표현하고 하루빨리 조선에 복음이 들어가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나타나고 있다. 편지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이곳 조선 땅에 오기 전 집 뜰에 심었던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집 생각만 했습니다.... 내년 봄이 되면 내가 심은 노란 꽃으로 덮여 있겠군요. 아버지 어머니 이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아요....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조선을 향해 가지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


그러나 그녀는 1908년 급성 맹장염에 걸려 수술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때가 꽃다운 나이 25세였다. 그녀의 시신은 양화진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모교회인 텍사스 청년들에게 <열 명씩, 이십 명씩, 오십 명씩 함께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또한 <만약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고 그녀의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죽음이 고향 텍사스 모교회에서 전달되면서, 텍사스 교회에서는 선교사를 모집하여 그녀의 사명을 이어가게 하였다. 그녀의 친구, 교회 동료들이 선교사로 지원하여 3년 동안 이십여 명이 한국에 와서 헌신하였다. 하나님은 그녀의 순교를 밀알로 사용하셔서 많은 선교사를 한국에 부르신 것이다. 당시 미국 벤더빌트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양주삼 목사(한국 감리회 초대 감독)가 1911년 이 아름다운 사연을 <그리스도인 회보>에 게재하여 루비 켄드릭 선교사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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