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한국 초기 선교를 이끌어간 선교사
한국 초기 선교를 이끌어간 언더우드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원두우, 1859~1919)는 북장로교 최초의 목사 선교사로서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함께 제물포 항에 입국하여 북 장로교 선교의 개척자가 됩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13세에 미국으로 이민하여 뉴욕 대학교와 뉴저지 주 뉴브런스윅 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신학교 시절 학생자원운동(SVM)에 참여하며 인도 선교사의 꿈을 키웠으나 어느 날 일본 선교사 올트만스로부터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아무도 조선 선교를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자신이 지원하라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그 후 언더우드는 선교부에 한국 선교를 신청하였으나 허가받지 못합니다. 당시 조선은 의사 및 교육 선교사만 허락되었기에 목사인 언더우드의 지원은 허가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3번이나 지원서를 내는 그의 결의를 보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총무목사 엘린우드는 지도부를 설득하여 허락을 받게 해 주었습니다.
그가 제물포에 도착 시 갑신정변으로 정국이 불안하여 당시 주한공사 푸트로부터 일본에 돌아갈 것으로 권유받습니다. 함께 도착한 아펜젤러는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에 잠시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총각인 언더우드는 알렌의 도움으로 서울 땅을 밟게 됩니다.
한국에 도착한 후 처음에는 제중원에서 알렌을 도우면서 사역을 합니다. 1886년 5월 정동에서 고아들을 모아서 을 공부를 가르쳤는데, 이것이 1905년 경신 학당이 됩니다. 1915년에는 연희전문학교가 되고, 이 학교를 통해 김규식, 안창호 등 많은 민족지사가 배출되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습니다. 1887년 9월 집 사랑채에서 예배를 시작하여 훗날 한국 최초 장로교회인 정동교회(현 새문안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주 : 한국 최초 교회는 서상륜/서경조 형제의 의해 시작된 황해도 소래교회가 있습니다.
그는 전도활동에도 매진하여 1887년 개성과 평양을 방문하였고, 1889년 3월에는 신혼여행으로 북부지방 1600Km를 전도 여행하였습니다. 여행기간 동안 600여 명 환자를 치료하고 100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교회 연합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YMCA 출범에 기여하였고, 1907년 장로교 독노회의 첫 노회장, 1912년 장로교 초대 총회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여 교단을 초월한 많은 선교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합니다. 1891년 첫 안식년 휴가 동안 미국에서 조선 선교의 필요성을 강연하고 남장로교 지도부를 설득하여 남장로교에서 최초로 선교사 7명을 파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1893년 내한한 맥켄지는 언더우드의 글을 읽고 한국 선교사의 소명을 받습니다. 또한 캐나다 에비슨 교수, 스왈론 선교사 및 영국 성공회 소속의 휴 밀러 등을 한국에 오도록 합니다.
그는 출판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사전 편찬, 한국학 연구 자료를 출판합니다. 그리고 문서 선교를 추진하여 1886년 조선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를 조직하였고, 1887년에는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성경번역에도 헌신하였습니다. 선교 잡지 < The Korea Review><The Korea Mission Field> 창간 및 신약전서 번역 출간에도 기여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만난 릴리아스 홀튼(명성왕후 시의, 의사) 선교사와 1889년 결혼하였고, 4대에 걸쳐 후손들이 한국 복음화를 위해 기여하고 있습니다. 부인 릴리아스는 여성 치료 사업 및 교육 사업에 헌신하였고, <상투들 속에서 지낸 15년>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한국인은 친절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으며 배우는 것을 즐긴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언더우드는 1916년 4월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그해 10월 뉴저지에서 57세로 소천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미국 뉴저지 유니온힐에 안장되었다가 1999년 아내 릴리아스 선교사가 묻혀있는 양화진에 합장되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열정적 성격의 소유자이며, 도전적인 사역을 수행하여 초기 한국복음화에 큰 리더십을 발휘한 선교사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친 형이 성공한 사업가이며 미국 선교부 이사로 활동하며 안더우드를 지원하여 재정 및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 땅을 위해 순종한 그의 삶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가 처음 한국에 도착한 후 드린 기도를 함께 읽어봅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않히셨습니다. (중략)
지금은 예배할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이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저의 믿음을 지켜주소서. 아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