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군산 예수병원 이야기
군산예수병원 선교사 계보와 활동
호남 지방에서 남장로교가 최초로 의료 선교를 시작한 곳이 군산이다. 1896년 4월 남 장로교 최초 의료 선교사인 드류(유대모) 선교사가 군산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시작되었다. 드류 선교사는 전킨 선교사와 함께 초가집에 교회를 설립하고 모퉁이에 약방을 만들고 환자를 돌보았다. 두 선교사는 오전에는 전도를 오후에는 환자를 진료했다.
1896년 가을에는 린니 데이비스 선교사도 합류하여 함께 활동했다. 린니는 이곳에서 2년간 활동하고, 1898년 해리슨 선교사와 결혼하고 남편이 거주하는 전주로 이동했다.
드류와 전킨은 복음선을 타고 섬 지역을 순회하며 진료하고 복음을 전하였다. 1899년 일본과 조약으로 군산항이 개방되면서 복음선이 정박하기 편리한 구암동으로 장소를 이동하고 예수병원으로 불렀다. 일제 강점기라서 병원 이름의 변경 요구되어 예수병원에서 구암 병원(구암동에 위치)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드류는 무리한 지방 순회활동으로 내한 5년 만에 건강이 악화되어, 1901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어서 1902년 알렉산더 선교사가 내한했으나 2달 만에 부친의 사망으로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귀국하였다. 이때 알렉산더 선교사는 한국인 통역사 오긍선(후에 세브란스 병원 한국인 최초 원장)을 미국으로 함께 데리고 가서 의사로 만들었고, 또한 재정으로 한국 선교를 후원하였는데 순천 알렉산더 병원이 그의 후원을 기념하여 명명된 병원 이름이다.
1904년 8월부터 토마스 다니엘 선교사가 부임하였다. 그는 대기실이 없어 추위에 떨고 있는 환자를 보고 병동을 신축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후원금을 받아서 2층 규모의 병동을 신축하고 이를 기념하여 애킨슨 기념 병원으로 명명되었다. 이제 병원 규모의 시설로 확장되어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1905년 남 장로교 최초 간호사 케슬러(계슬라)가 부임하여 함께 의료 활동과 전도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다니엘 선교사는 6년 사역 후 1910년 전주 예수병원으로 이동하였다. 이 시기 한국인 오긍선 의사가 약 3년간(1906~1910) 근무했다.
1910년 패터슨 선교사가 부임하여 병원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는 외과 의사로서 의술이 알려지면서 병원에 환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병원 건물을 확장하고 한국식 온돌방을 만들어 환자에게 편리를 제공하였다. 1916년 한 해 동안 15천 명을 진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병원이 가장 크게 성장한 시기이다. 패터슨 선교사의 부인 로제타 크랩의 헌신도 기억할 만하다. 그녀는 외국인 환자를 돌볼 시설이 마땅히 없어 자신의 집에서 환자를 돌보며 간호하였다. 패터슨은 1924년까지 14년 헌신하고, 다음 해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26년 선교사 직을 사임하고 영구 귀국했다.
그 후 1926년 브랜드(부란도) 선교사가 부임하였다. 그는 병원 환자를 돌보면서 또한 농촌 지역(김제, 옥구 등)을 방문하여 환자를 진료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그는 4년간 군산에서 사역하고 1930년 전주로 이동했다.
그가 이동 후 군산 병원에서는 그리어 간호사가 병원을 운영하였다. 1931년 홀리스터 선교사가 부임하였으나 1933년 장티푸스와 결핵 합병증으로 조기 귀국하였다. 그래서 미국 선교부의 요청으로 미국에 가있던 그리어 선교사가 1933년 다시 내한하여 2년간 병원을 돌보고 돌아갔다. (늦게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미국에 거주하여 돌아감) 홀리스터 선교사는 미국에서 병을 회복하고 1935년 다시 군산으로 왔으나 1936년 부인이 뇌종양으로 신체가 마비되어 1937년 영구 귀국했다.
의사 선교사가 부재중에는 전주 예수병원의 보그스 선교사가 1937년까지 주 2회 방문하여 환자를 돌보았다. 이때 한국인 의사로는 1931년부터 근무한 세브란스 의전 출신 강필구가 있었고, 1937년부터는 홍복근 의사가 병원을 책임지고 운영하였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홀리스터 후임으로 제임스 윌슨(광주 기독병원 원장을 역임한 로버트 윌슨선교사 아들)을 임명하여 1939년 부임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1940년 일제의 선교사 강제 철수 요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후 군산 구암 병원은 1941년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 등 간섭과 선교사의 강제 추방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의사이던 홍복근은 빈민가인 서래 장터 근처에 함석집을 구해 구암 병원 간판을 걸고 개업하였다. 그 후 병원은 명산동으로 이전하여 1892년까지 진료를 보다가 완전히 문을 닫고 말았다.
군산 예수병원에서 활동한 간호 선교사는 1905년 시작한 에델 케슬러 선교사가 최초이다. 그녀는 다니엘 선교사를 도와 환자를 돌보고 지방을 순회하며 환자를 돌보고 복음을 전하였다. 그녀는 1912년 전주 예수병원으로 이동하였다.
이어서 1914년 쉐핑(서서평) 선교사가 부임하여 3년간 군산 예수병원에서 헌신하였다. 그녀는 군산에 한국인 간호사 양성이 필요함을 장로교단에 알리고 학교 설립을 요청했다. 그녀는 1918년 서울로 이동하였고, 후임으로 1919년부터 레쓰롭 선교사가 군산에 와서 8년을 헌신하였다. 그녀는 병원에 버려진 고아들을 가정에 입양시키고 간호사 교육 및 병원 관리를 감당하는 등 다방면에 헌신하였다. 1927년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또한 그레이 선교사가 1921년 내한하여 군산에서 근무했고 1925년 사임하였다.
1929년에는 안나 그리어 선교사가 순천에서 군산으로 전임하였다. 당시 의사 선교사의 잦은 이동으로 인해 그녀가 병원 운영을 담당하였다. 1937년에 우즈 간호사가 부임하여 한국인 간호사를 양성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1939년 윌슨 간호사가 부임하여 근무하다가 일제의 선교사 철수 요구로 1940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끝
<군산 예수병원 원장 계보>
드루(1896~1901) - 알렉산더(1902) - 다니엘(1904~10910) - 패터슨(1910~1926) - 브랜드(1926~1930)- 홀리스터(1931~1933, 1935~1937) - 제임스 윌슨(1939~1940)
<군산 예수병원 간호사 계보>
케슬러 (계슬라, 1905~) - 쉐핑 (서서평, 1914~1917) - 래쓰롭 (라두리, 1919~1927) - 그레이 (엄엘라, 1921~1925) - 그리어(기안라, 1927~1935) - 우즈(임헤인, 1937~1940) - 에드나 윌슨 (1939~1940)
참조 1) 이규식 논문, 전라북도의 서양의학 도입과정, 2008년
2) 한미영 논문. 한말 일제 강점기 내한 간호 선교사의 사역 연구, 2014년
3) 송현강 저, 미국 남장로교의 한국선교,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