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서민의 의사 스크랜턴 선교사 이야기

평안한 삶을 뒤로하고 가난한 자를 위해 헌신

by 신재천

서민을 위한 의사 윌리엄 스크랜튼 선교사는 (1865~1922) 1885년 5월 1일 북 감리회 선교사로 부인(암즈), 어린 딸 그리고 어머니(메리 스크랜튼)와 함께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예일대와 뉴욕 의대를 졸업한 수재로서 개업한 의사였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이 땅에 왔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가우처 선교사로부터 한국 선교의 요청을 받고 처음에는 수락하지 않았다. 그 후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하다 병이 나으면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한국 선교의 동기가 된다.


서울 도착 후 처음에는 제중원에서 알렌을 도우는 일을 하다가 그해 9월 자신의 집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이것이 1887년 고종으로부터 시병원으로 명명된 정동병원의 시작이다. 이후 스크랜턴은 미국 본부에 여의사를 요청하여 메타 하워드가 입국하게 되었고 1887년 여성용 병원인 보구여관(동대문병원 전신)을 개원하였다.


1888년 스크랜턴은 일반 서민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서대문 애오개(현 아현교회), 남대문 상동(현 상동교회), 동대문 지역(현 동대문교회)에 시약소를 설치했다. 남대문 시약소에는 맥길 선교사가 환자를 돌보았다.


1894년 일반 서민들이 많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동병원을 상동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이곳에 상동교회가 세워졌고 민족 활동의 중심지가 되며, 전덕기, 신석구, 이준 등 민족지사가 이 교회에서 배출된다. 특히 6대 담임 전덕기 목사(1875~1914)는 애국지사들과 함께 을사늑약조약 무효 상소 운동, 헤이그 밀사 사건 및 신민회 조직 등 민족 활동의 장소로 상동교회를 활용하였다. 이곳에서 활동한 독립지사를 상동파라고 부른다.


스크랜튼의 목회 사역은 1892년 서울지역을 담당했고 1901년에는 서울 및 경기 남부 지방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그 후 중부지방 지방회 전체를 감리하는 총감독직을 수행하였다. 또한 초기 성서 번역사업에도 참여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1907년 한국 선교를 관장하는 해리스감독(일본 거주)의 친일적인 정책에 반대하여 선교사 직을 사임했다. 그 후 몇 년간 구세군 및 성공회 소속으로 의료 활동을 지속하고, 천안 등에서 독립적으로 의료 선교활동을 지속했다. 1909년 어머니 간병을 위하여 서울에 요양원을 설립하였고, 1911년 평북 운산 그리고 1913년 충남 직산에서 금광 부속병원의 노동자를 돌보았고, 개인병원인 시란돈 병원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1916년 사위가 거주한 대련에서 1년간 머무르다 1917년 일본 고베로 가서 고베 해성병원에서 근무하였다. 당시 고베에는 한인 노동자가 많았기에 한국어에 능통한 그는 그들을 돌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베에서 거주하다가 1922년 3월 23일 85세의 일기로 소천하였다. 그의 묘지를 찾지 못하다가 1991년 한국인 교수의 노력으로 고베 카스가노 묘지에서 발견하였다. 그가 별세한 후 70년 만에 일이다.


스크랜튼은 4대 문 안에 거주하는 양반 중심의 선교활동에서 벗어나 과감히 서민을 위한 사역으로 방향을 바꾸어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몸소 실천하였다. 1886년 그의 연례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어느 날 오후 도성을 따라 걷는데 가마니 한 장 깔고 구걸하는 모녀를 발견했다. 그들은 풍토병에 걸린 환자였으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스크렌튼은 그날 저녁 그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와서 잘 보살펴서 건강을 회복토록 하였다.>


이 일로 인해 스크랜튼은 서민을 위한 의료 활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현재 그와 연관된 교회(아현감리교회, 상동교회, 동대문교회, 수원 종로교회 등)가 연합하여 년 1회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다. 스크랜튼과 친하게 지낸 노블 선교사는 그의 죽음에 대해 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죽음은 그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미국에서 최상류 층의 삶을 포기하고 낮은 곳에 내려와서 한국의 가난한 서민을 위해 헌신한 것이다. 스크랜튼 선교사의 유해가 아직도 일본에 있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아현감리교회에는 그를 기념하여 흉상이 세워져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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