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깁슨, 부유한 삶에서 선교사 부인으로

해론 부인 그리고 게일의 아내로 살아간 여인

by 신재천

해리엇 깁슨 선교사(1860~1908)는 부유하고 신앙이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과 대학 교수이고 어머니가 기독교 교육자인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그녀는 대학 시절 의대생인 헤론을 만나 연애하고 졸업 후 결혼하였다. 그리고 1885년 6월 헤론이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어 함께 내한했다.


그녀는 먼저 제중원에서 남편의 의료 사역을 도왔다. 1903년 3월 모펫 편지에서 《깁슨은 매주 20~30명의 여자 아이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세례 문답 교육을 실시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여학교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건강 악화로 그녀의 학생들을 스크랜턴 부인에게 인계하여 훗날 이화학당 학생이 되게 하였다. 뛰어난 한국어 실력으로 여성 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며 비선교적 결정을 하는 알렌과 당당히 맞선 여인으로 전해진다.


1890년 7월 여름휴가 기간 중에 환자를 돌보던 남편의 임종이 임박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당시 그녀는 남한산성에서 수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밤에 억수같이 비를 맞으며 서울로 돌아와서 사랑하는 남편의 임종을 본다. 《한국과 한국인을 더 뜨겁게 더 사랑하고 싶소》 그리고 그동안 가까이 지낸 조선인들에게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 헤론은 최후의 말을 하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남편이 떠난 후에도 한국에서 사역하기로 마음먹고 천로역정 책을 한국말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당시 치안이 불안한 시대여서 남편 없는 과부 혼자서 두 딸을 키우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머리맡에 권총을 두고 잠을 잤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 게일과 모펫 두 남자 선교사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게일의 적극적인 구애로 그녀는 1892년 게일과 재혼하였다.


재혼 후 원산으로 사역지를 이동하는 게일을 따라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한 여자들》이란 글을 남겼다. 또한 1895년 게일과 함께 천로역정 번역을 완성하였다. 천로역정 번역본은 한국 교회에서 교리 교육을 위해 많이 사용된 책자이다.


그 후 원산 지역이 캐나다 선교사 구역으로 결정되면서 1900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게일의 목회를 도우며 사모로 살아갔다. 그러나 폐렴이 심하여 일본과 스위스 등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하는 등 병의 회복을 위해 애를 썼다. 1907년 스위스에서 서울로 돌아왔으나, 다음 해인 1908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았다. 그녀는 게일과 16년 결혼 생활을 하였으나 첫 남편인 헤론 옆에 안장되기를 희망하여 그의 시신은 양화진 헤론의 묘소 옆에 안장되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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