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아스 호튼, 신혼여행을 전도여행으로 실시
언더우드 부인으로 의료 및 문서 사역에 발자취
릴리아스 호튼 선교사(1851~1921)는 1888년 3월 북장로교 선교사로 입국하였다. 당시 북장로교 선교사가 운영하던 제중원에서 최초 여성 진료를 담당한 애니 앨러스가 사직하여 그녀가 두 번째 여의사로 선정된 것이다.
호튼은 1851년 뉴욕 주 앨버니에서 태어났다. 병을 앓아 대학 진학을 못하다가 선교사의 꿈을 품고 20대 말에 앨버니 신학교와 시카고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의사 수련을 마친 후 인도 선교사로 임명되었으나, 한국에서 여의사가 필요됨에 따라 선교지를 한국으로 변경하였다.
그녀는 한국에 와서 제중원에서 앨러스의 후임으로 여성을 진료하였으며 명성왕후의 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1889년 3월에 8살 연하인 언더우드의 구애를 받아들여 결혼하였다.
그들은 신혼여행으로 전도여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 지역 1600km를 이동하며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고 환자를 치료했다. 때로는 가마를 타고 때로는 걸으면서 이동했고, 600여 명을 치료하고 성경을 나누어 주었으며, 100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당시 한국 내에서는 세례를 베풀지 못하게 되어 압록강을 건너가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이것을 압록강 세례로 부른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제중원에서 여성 치료에 매진하였으며, 문서 사역에도 참여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The Korea Mission Field> 잡지의 편집 책임자가 되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렸다. 특히 남편이 소천한 후 <언더우드 전기>와 <상투쟁이들과 함께 한 15년(1904년)>을 저술하여 당시 풍습과 선교활동을 소개하는 중요한 자료를 남겼다.
이 책에는 한국인을 친절하고 선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당시 활동한 선교사들이 소개되어 한국 교회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녀는 1921년 10월 70세로 소천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언더우드 가족으로는 처음으로 양화진에 안장된 것이다. 그 후 그들의 후손에 의해 남편 언더우드 선교사의 유해가 미국에서 이장되어 1999년에 양화진에 합장되었다. 현재 양화진 묘소에는 언더우드 가족 7명의 선교사가 안장되어 있다.
언더우드 가문은 4대째 한국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녀의 외아들 호러스 언더우드(원한경)는 연희 전문대 3대 교장으로 사역하였고 한국 교육 발전과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하였다.
3대 후손은 5자녀(4남 1여)가 있었는데 3자녀가 한국에 거주하며 교수 혹은 한미재단 책임자로서 헌신하였다. 현재는 4대 후손(원한광, 원한석)들이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며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에는 《언더우드 기념관》이 설치되어, 언더우드 가문의 선교 활동과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