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펜윅, 자립형 선교사로 일과 목회 병행

한국 침례교 개척한 선교사

by 신재천

말콤 펜윅 선교사(1863~1935)는 이 땅에서 45년을 사역하며 원산 및 충청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한국 침례교 모태가 되는 동아 기독교회를 창설한 선교사이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태어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농사와 원예 농장에서 일하였고, 토론토로 이주해서는 철물상 관리인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던 중 학생자원운동의 부흥회를 참석하여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비록 녹슬고 찌그러진 통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구하는 물을 나를 수 있습니다.> 중국 선교사 로버트 월더의 간증이 그를 선교사로 도전하게 하였고, 한국에서 선교 중인 해론 부인이 복음 전하였다는 이유로 구속된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한국행을 결심하였다.


그는 1889년 9월 한국 도착하여 서울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평신도로서 선교회 후원 없이 사업가 몇 사람의 후원으로 이 땅에 왔다. 먼저 한국어 선생으로 서경조 목사(소래교회 초대 목사)를 만나 황해도 소래에 가서 1년간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혔다.


그리고 1891년 원산으로 가서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초기 사역은 쉽지 않았다. 한국 사람의 배신, 재정문제 등으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원산 사역 2년 만에 그는 캐나다로 돌아가서 보스턴 선교훈련학교(침례교 신학교)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의 신학공부를 마친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1896년 원산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는 자국민에 의한 전도의 중요함을 인식하여 원산에서 <한국 순회 선교회>를 조직하고 한국인 전도자를 양성하였다. 그는 다른 선교사와 다르게 자력으로 선교 재정을 충당했기에 원산 관교동에 과수원 2천 평을 조성하고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였고, 서구의 농작법을 도입하여 적용하였다.


1901년 그의 사역은 공주, 강경 등 충청도 지역으로 확장했다. 충청도에서 선교하던 <엘라 씽 기념 선교회> (보스턴 고든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지원)가 재정 문제로 철수함에 따라 소속 교인과 재산을 펜윅에게 양도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충청도 복음화 활동을 시작했고, 신명균 전도자를 공주 성경학원장으로 파견하였다.


그는 1903년부터 성경학원을 개설하여 체계적으로 성경공부와 노동을 겸한 전도자를 양성하였다. 펜윅은 임박한 재림을 강하게 믿었기에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강조하였다.


원산에서 시작한 성경학원은 공주지역에도 확대하였고, 성경학원 수료자를 만주와 시베리아로 파송하였다. 1906년 함태영 외 4인의 파견을 시작으로 많은 전도자를 파송하였다. 그는 타 선교사가 진출한 지역은 피하였기에 성경학원을 통해 양성된 전도자들을 북방지역으로 파견한 것이다. 이것이 북방 선교의 시작이 되었다. 북방지역에 파견된 전도자들은 일본군에 의해 독립군으로 오인받아 많은 분들이 순교하였다.


1906년 충청도 강경에서 31개 교회가 모여 <대한 기독교회>라는 교단이 탄생하고 펜윅 선교사가 초대 총회장이 되었다. 원산에서 시작된 <한국 순회선교회>와 충청지역 <엘라 씽 선교회>를 통합한 교단이 된 것이다. 본 회를 통해 40년간 200여 교회 및 250명의 사역자를 배출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대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동아 기독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본 회를 통해 성경 번역 및 찬송가를 보급하는 활동을 하였고, 이것이 한국 침례교회의 모태가 된다. 본 회는 1914년 제2대 감독으로 이종덕 목사를 임명함으로써 한국인 사역자를 통해 운영되었다.


펜윅은 문서 선교활동에도 열심이었다. 1891년 <요한복음전>, 1899년 <빌립보서>를 번역하였고, 1915년 신약성경 전부를 번역했다. <복음찬미> 찬송가를 발행하여 300여 곡을 수록했다. 또한 1911년 자서전인 The church of Christ in Corea, 1917년 Life in the Cup를 출간했다.


그는 1903년 40세의 늦은 나이에 개성 호스돈 학교 교사로 활동하던 하인즈 양을 만나 결혼하였다. 하인즈는 오직 복음화에 헌신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원산 성경학교에서 여성을 교육하고 제자 훈련에 중점을 두고 사역하였다.


펜윅은 1935년 12월 72세의 나이로 원산 자택에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은 봉문으로 하지 말고 간단한 평장으로 하라고 했고, 자신의 모든 재산은 교단의 발전을 위해 바쳤다. 겸손한 자세로 사역하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의 삶이었음을 유언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펜윅의 사역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자국민에 의한 복음 전도이다. 성경학원을 통해 전도자를 양성하고 그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였다.


둘째 자체적으로 재정을 충당하며 사역했다. 과수원을 만들어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으로 교육 및 전도활동을 수행했다.


셋째 선교지를 선정함에 있어서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만주와 시베리아, 몽골로 선교사를 파견하여 북방선교를 개척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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