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 멘지스, 부산의 호주 여선교사의 어머니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과 고아를 위해 헌신

by 신재천

벨리 멘지스 선교사(민지사, 1856~1935)는 부산에서 28년간 사역하면서 여성 선교사의 대모로 불리며 여선교사의 어머니 역할을 하였다. 그녀의 선교 활동은 주로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해 고아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했다. 조용하고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로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이다.

그녀는 1856년 호주 빅토리아주 벨러렛에서 10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어릴 때 사망하여 신앙심이 강한 어머니 아래 성장하였다. 공립학교를 졸업 후 사설 신학교를 수학하고 빅토리아 여 선교회 에벤에저 교회에서 봉사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 선교사 모집 광고를 보고 한국 선교사로 자원하였다. 최초 호주 선교사인 데이비스의 순교로 인해 추가 파송 선교사를 모집하는 광고였던 것이다.


그녀는 여 선교회 소속으로 한국 파송을 받고 35세의 나이로 1891년 10월 부산에 도착하였다. 이때 호주 선교사 5명이 함께 한국에 왔다.


* 데이비스 순교 이후 파견된 호주 선교사 5인 : 여 선교사 3인(멘지스, 진 페리, 메리 포세트) 그리고 맥케이 부부

1) 진 페리(18**~1935) : 미오라 고아원 시작하며 3년간 사역, 호주 선교회와 갈등으로 탈퇴하고 독립 선교사로 서울에서 20여 년간 활동

2) 메리 포세트(1862~1938) : 사라의 소천으로 홀로 된 제임스 맥케이와 1892년 결혼하고 사역을 도왔으나, 남편의 건강 악화로 1894년 호주로 돌아감

3) 사라 맥케이 (1859~1892): 간호사, 맥케이 부부 선교사로 파송되어 왔으나 한국 도착 3개월 만에 병으로 소천, 부산 복병산에 안장 (데이비스 묘소 옆)

4) 제임스 맥케이 : 부인 사라 맥케이가 소천하는 아픔을 겪고,1892년 함께 내한한 포세트와 재혼하였으나 건강 악화로 인해 1894년 호주로 돌아가서 목회


그녀는 한국 도착 후 먼저 한국어 공부를 시작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이때 한국어 교사였던 심상현이 부산 최초 세례자가 되었다. 심상현은 1894년 개종 후 6개월 만에 병으로 소천했으나, 그의 가족이 모두 개종하였다. 특히 동생 심취명은 엥겔 목사의 권면을 받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부산진교회를 2대 담임 목사로 헌신하였다.


그녀는 부산에서 성경 공부반 운영 및 순회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1893년에는 집 앞에 버려진 아이로 인해 그 아이를 돌보며 고아원을 시작했다. 이것이 미오라 고아원이다. 고아원은 처음에는 진 페리 선교사가 운영했으나 사임 후 멘지스가 책임을 맡고 운영했다.

* 미오라는 안식처의 의미를 가진 단어로서, 고아원에 재정을 기부한 후원자인 제인 하퍼의 집 이름을 인용하여 미오라 유치원으로 명명하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895년 부산진 지역에 일신여학교(중등과정)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으로 사역하였다. 그 후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동래일신학교(고등과정)로 확대되었다. 그 후 1940년대 일반인에게 매매되면서 현재 동래여고로 존재하고 있다. 초기 학교 사옥은 1905년 건축된 부산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남아있고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녀가 속한 선교회는 부산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교회의 필요성에 따라 예배 모임을 시작한 것이 훗날 부산진 교회 설립의 모태가 되었다. 부산진 교회는 1891년 베어드 선교사가 시작했으며, 1900년 10월 엥겔(왕길지) 목사가 부임하여 체계화하였다.


1908년 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호주로 돌아갔다. 그녀의 사역은 니븐(Neven) 선교사가 대행하였다. 그녀는 어머니가 별세한 후, 4년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1912년 다시 한국에 왔다. 그리고 1924년까지 12년간 한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1924년 67세의 나이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1935년 9월 7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갔다. 그녀는 노년에 중풍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시신은 고향인 밸러렛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현재 동래여고에는 그녀의 기념관이 있고, 부산진 교회에는 그녀의 헌신을 감사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녀에 대한 일화로는 1914년 집 앞에 버려진 아이를 양녀로 삼고 양육하였는데 그 아이가 민신복 여사이다. 그 아이가 결혼할 때 멘지스는 한국을 방문하여 참석하였다. 민 여사는 부산에서 평범한 신앙인으로 살아간 것으로 알려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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