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베어드, 찬송가 《멀리멀리 갔더니 》 작사

베어드 선교사 부인으로 한국어 찬송가 10여 곡 작사

by 신재천

애니 아담스 선교사(안애리, 1864~1916)는 베어드 선교사 부인으로 25년간 이 땅에 거주하면서 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한국어 찬송가 《멀리멀리 갔더니》 등 10여 곡을 작사한 선교사이다.​

그녀는 1864년 11월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나서 하노버 대학에서 2년 수료하고 와쉬번 대학으로 옮겨 졸업했다. 졸업 후 캔자스 주 YWCA 간사로 일하였다.


1890년 11월 베어드 선교사와 결혼하고 결혼 당일에 고향을 떠나 선교 길에 올랐다. 한국으로 선교 가는 길이 신혼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1891년 1월 27세에 한국에 도착하여 서울에 머물면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 장로교 선교회로부터 부산 지역 선교토록 배정받아 그해 11월 부산으로 이동했다. ​


베어드 부부는 부산에서 주택을 건축하고 사랑방을 선교사의 주일예배 장소로 사용했다. 그 밖에도 전도 준비, 서적 번역, 성경 공부, 서당 교육 등 활동 장소로 활용토록 하였다. 이 사랑방은 부산의 첫 번째 교회인 초량 교회의 모태가 됐다. 그녀는 남편의 목회 사역을 돕고 한국 청년들, 특히 여성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그녀는 한국 찬송가 번역과 편집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약 10여 곡을 한국어로 작사했는데 그중에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440장 <멀리멀리 갔더니>, <나의 갈 길 모르니>, 《인애하신 구세주여》, 《예수 사랑 하심은》등이 있다.


1892년 당시 남편은 일 년에 반은 순회전도 다니며 집을 비우고, 또 사랑하는 첫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어 마음이 슬프고 외로운 마음에 미국 찬송가에 가사를 붙인 것이 《멀리멀리 갔더니》 찬송가이다.


1897년 교육 선교를 위해 남편이 서울로 발령받아 그녀도 서울로 이동하였다. 1893년부터 남편이 대구 지역 선교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대구 사역은 그녀의 친동생 아담스에게 인계하여 아담스가 대구 지역 복음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후 부부는 학교 설립 장소로 평양이 적합하여 평양으로 이동하였고, 남편 베어드는 평양 숭실학당(숭실 대학교 전신)을 시작하였다. 그녀도 여성 교육을 담당하며 숭의 여학교 교장 및 평양 외국인 학교 발기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동물학, 식물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 교재를 여러 권 출간했다. 또 조선을 배경으로 한 선교문학인 『한국의 새벽』, 『고영규전』을 저술해 선교 본부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외에도 1986년 한국어 회화 교재 <조선어 50강>, 1906년 식물 소설 《식물학 서적》을 편찬하였다.


또한 전국 순회 전도에 3번이나 참여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16년 6월 51세의 나이로 암으로 별세하여 평양 외국인 묘역에 안장되었다. 현재 양화진 제2묘역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긴 싸움이 끝나고 조금 후엔 내게 날개가 달리리라.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나에게 좋았다...》 그녀는 슬하에 5남매를 두었는데 두 자녀(첫 딸 낸시, 다섯째 아더 패리스)를 병으로 이 땅에 묻었고 두 아들은 2대째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둘째 아들 베어드 2세(배의림, 1897~1987)는 1923년 한국 선교사로 재입국하여 황해도 재령에서 선교 활동하고 양화진 묘지에 안장되었다. 셋째 아들 리처드 베어드(배위치, 1898~1995)는 1923년 형과 함께 입국하여 강계 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하였고, 강계 성경학교 교장으로 사역하였다. 아버지 베어드 선교 일대기 <William Baird of Korea>를 책으로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1995년 1월 소천하여 양화진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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