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왈론, 깡패 김익두 및 이기풍을 회심시킨 선교사

평양 및 관서 지방에서 40년간 복음화에 헌신

by 신재천

윌리엄 스왈론(소안론, 1865~1954) 선교사는 한국 복음화를 위해 40년을 헌신하였다. 평양에서 관서 지방에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전고 특히 초기 부흥사인 김익두 목사와 제주도 전도의 선구자 이기풍 목사를 회심케 한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주 말번에서 태어나 1889년 우스터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1892년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1892년 5월 아내 샐리와 함께 북장로교 선교사로 파견을 받아 한국에 왔다. 그가 올 때 무어, 그레함 리 선교사와 함께 왔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여 먼저 한국어를 익히고 평양 선교부에 배속되었다. 평양 및 관서 지방에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1894년부터 원산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고, 그곳에 있던 게일 선선교사와 협력하였다. 한국인과 동일한 옷을 입고 수염을 길러 한국인과 동화하려고 노력했고, 1896년과 1897년 두 번에 걸쳐 함흥 지방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결신자를 만들었다.


1898년에는 처음으로 내륙 도시 여행 허가를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받아냈다. 당시 외국 선교사는 인천, 원산, 부산 등 개방된 항구 도시에만 거주하게 되어 있었는데, 선교 허가의 명목으로 호조로부터 내륙 여행 허가증을 받은 것이다. 이 허가증이 선교사의 복음 전도 활동이 법적으로 보장받는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그 후 1899년 원산 지역이 캐나다 장로교로 이양되자 그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서 황해도 재령과 안악 지역을 개척하는 일을 하였다. 안악 교회 등에서 설교하고 지방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베어드가 설립한 숭실학교에서 근무하였고, 1901년 조선 예수교장로회 공의회(선교사와 한국 목회자 모두 참여) 초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마펫, 베어드와 함께 평양 신학교 발족에 협력하였다.


그는 깡패 이기풍과 김익두를 회심시킨 선교사이다. 김익두는 황해도 안악에서 유명한 깡패였다. 안악 교회에서 스왈론이 인도하는 부흥사경회를 열였는데, 부인 샐리가 장터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데 김익두가 나타나 전도지를 코로 풀어버렸다. 그래서 샐리가 <그렇게 하면 당신의 코가 썩습니다>라고 말을 하자 김익두는 걱정이 되어 그날 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 후 안악 교회에서 스왈론의 영생 주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을 삶을 되돌아보고 회개하며 교회를 출석하게 된 것이다. 그 후 10개월간 언행을 삼가고 술을 끊고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스왈론에게 세례를 받고 스왈론의 매서인이 되어 함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훗날 평양신학교 3회 졸업생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대부흥사로 거듭난 것이다.


이기풍은 평양 장터에서 복음을 전하던 마펫에게 돌을 던져 턱을 상하게 한 깡패 두목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을 피하여 원산에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마펫과 닮은 스왈론 선교사를 또 만나면서 정신이 혼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날 밤 꿈에서 주님이 나타나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였다. 그 후 이기풍은 스왈론을 찾아가 꿈 이야기를 전하고 회개하고 복음 전하는 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는 평양 신학교를 1기로 졸업하고, 제주도에서 최초 복음 전하는 자가 되었다.


스왈론 부부는 1917년 가정에서 성경공부가 중요함을 인식하여 성경 통신과정을 개설하였다. 문답 형식으로 교재를 만들어 구약 20개 단원, 신약 12개 단원을 만들어 성경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교재는 한국 주일학교에서 도입하여 사용할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그는 농학을 전공하였기에 한국에서 농사와 과수원 재배법을 전하였다. 평양 외곽에 거주하면서 농사와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한국인에게 선진 경작법을 알려주었고 특히 사과 묘목 300개를 가지고 와서, 황해도 황주와 대구에 전달하여 개량에 성공하기도 했다.

또한 음악에 소질이 있어 여러 찬송가를 작사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죄를 회개하고>, <찬송하는 소리 있어> 등이 그의 작품이다.


1932년 73세의 나이로 선교사 직을 은퇴하고 1937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1954년 5월 미국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 89세의 생을 마감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의 두 딸인 올리베트(교사)와 걸트느드(6.25 종군 목사이며 거제 수용소에서 전도활동을 한 해롤드 보겔의 부인)도 한국 선교사로 헌신하여 2대가 한국 복음화에 헌신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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