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함 리, 평양 대부흥회의 주역 선교사

신발이 해어지도록 순회하며 전도

by 신재천

그레함 리 선교사(이길함, 1861~1916)는 20년간 평양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이다. 평양 장대현 교회 담임 목사로서 평양 대부흥 운동을 견인한 주역이다. 마펫 선교사가 평양 선교의 개척자라면 그레함 리 선교사는 평양을 부흥시킨 선교사이다.

그는 일리노이주 록 아일랜드에서 태어나서 레이크 포스트 대학교 및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 후 1892년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록 리버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곧바로 한국에 왔다. 1892년 5월 무어, 스왈론 선교사와 함께 입국한 것이다. 그 후 1894년 잠시 미국에 가서 블랑크 웹과 결혼하고 부인과 함께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평양 선교부에서 사역하면서, 평양 신학교 교수로 활동하였고 장대현 교회를 공동으로 담임(마펫과 함께)하였다. 성령이 이끄는 사역으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길선주 목사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는 혹독한 겨울에도 부흥회 설교가 요청되면 서슴치 않고 달려갔는데 추운 겨울에 최북단 강계 지역까지 320km를 달려갔다고 전해진다. 신발이 해어지도록 순회 전도를 실시하여 그레함 리의 신발보다 더 닳은 신발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1894년 서울 연동 교회 설립에 기여하였다. 그가 연못골, 지금의 연동 교회당 입구에 초가 한 채를 매수하여 예배 처소로 삼으면서 연동교회(그 후 무어 선교사가 사역)가 시작되었다. 1895년에는 메리 기포드와 함께 찬성시를 만들어 서북지방에서 사용토록 했는데, 1902년부터 장로교 공인 찬송가로 선정되어 활용되었다.


그는 장대현 교회에 시무하면서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자신이 먼저 하디의 설교에서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1907년 평양 부흥회 첫날 저녁에 그레함 리 목사가 회개를 자복하는 집회를 인도할 때 많은 사람이 자복하며 성령이 일하심이 일어났다. 당시 평양 대부흥을 취재한 미국 기자의 기록에는 수백 명의 한국인들이 그레함 리를 영적 지도자로 따르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2년 건강이 악화되어 20년의 선교사 활동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16년 12월 55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길로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미국 장로교 선교부는 <한국 복음화의 위대한 선교사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것을 엄숙히 언급한다>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한국 복음화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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