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동산 의료원을 설립한 대구 의료 개척자
가난한 자와 한센병 환자를 돌본 선교사
우드브리지 존슨 선교사(장인차, 1869~1951)는 대구 의료 선교의 개척자로서 대구 제중원 (현 계명대 동산 의료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자 및 한센병 환자에게 치료를 통해 복음을 전하였다.
존슨은 1869년 6월 미국 일리노이 주 게일스버그에서 태어났다. 1891년 6월 펜실베이니아 주 라파옛 대학을 졸업한 뒤 1895년 6월 펜실베이니아 의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뉴욕 킹스카운티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윌키스 바레 시립 병원에서 다시 인턴 과정을 밟았다. 그는 대학시절 무디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 학생 자원 봉사자에 가입하고 장차 의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1897년 6월 북 장로교 선교사로 임명되었고, 그해 10월에 에디스 파커와 결혼하였다. 부인 에디스 파커는 남편의 선교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뉴욕 슬로우 병원에서 조산학을 배웠다. 그들은 결혼한 후 곧바로 한국으로 출발하여 12월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아담스 부인의 해산이 임박하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대구로 이동하였다. 존슨은 189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조랑말을 타고, 부인은 가마를 타고 대구 남문 안으로 들어왔다.
존슨은 의료 물품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한국어를 익혔다. 1899년 여름에 약만 제조하는 《미국 약방》이란 간판을 달고 사역을 시작하였다. 1899년 12월 의료 물품이 도착하면서 《대구 제중원》으로 진료소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시작이다.
1906년 동산동에 병원 건물을 신축했으며, 1909년 최초 제왕절개 수술에 성공하여 대구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또한 많은 한센병 환자가 병원에 와서 그들을 위해 한옥 한 채를 구입하여 한센병 환자 요양소로 사용하여 그리스도 사랑을 실천하였다. 존슨은 의사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서 1908~1909년에는 7명 학생을 선발하여 의학을 가르쳤다.
그는 1910년까지 초대 병원장으로서 사역한 후 1911년 플레쳐에게 병원장 자리를 인계하였다. (1911년 제중원을 동산기독병원으로 개명)
존슨은 대구에 사과를 보급한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그가 대구에 올 때 서양 사과나무 묘목을 가져와서 심은 것이다. 현재 동산병원 구내에는 존슨의 묘목에서 자라난 2세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대구 사과나무는 아담스와 존슨 두 사람에 의해 최초로 들여왔다고 본다. 존슨은 미조리 주에서 가져와 묘목 그대로 심었고, 아담스는 캔자스 주에서 가져와 접목하여 심었다고 본다.
존슨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사 안수를 희망하여 1912년 장로교 총회에서 허락이 되었으나,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1912년 11월 미국으로 돌아가서 결국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였다.
대구 선교부는 그의 사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헌사 하였다. <선교회의 창립 회원인 존슨 의사 내외의 사임을 슬퍼하고 있다. 그들은 1897년 내한하여 비위생적인 도시환경에서 의료사업을 시작하다 결국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었다. 목숨은 건졌으나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서 원기를 회복할 희망을 단념해야 했다.(중략) 그의 이름은 그가 한평생을 바쳐 사역한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며 사랑을 받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