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스, 성경 보급으로 시작하여 목사가 된 선교사

히브리어 능통하여 구약성경 번역에 기여

by 신재천

알렉산더 피터스 선교사(피득, 1872~1958)는 성경 보급으로 시작하여 목사가 되고, 경기도 남부 지역에서 세곡교회 등 10여 개 교회를 세웠다. 또한 히브리어에 능통하여 한글 구약성경 번역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러시아 남부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유대인이었기에 히브리어가 능통하였다. 1895년 철도 노무자가 되기 위해 일본 나가사키에 머물다가 그곳 예배에 참석한 후 개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곳에 선교사로 있던 피터스 목사에게 성경 공부를 하면서 회심하고 세례를 받았다. 개종하면 이름을 바꾸는 러시아 관습에 따라 피터스 목사의 이름을 따라 자신의 이름도 피터스로 개명하였다.


그는 1895년 5월 미국성서공회 권서(성경 판매자)로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콜레라가 유행하여 병원에서 에비슨을 도왔고, 병원 일을 마친 후 서울 남부지방(수원, 여주 등)으로 전도 여행을 떠나는 무어 목사와 동행하며 성경을 팔았다. 관청과 장터를 방문하며 일반 서민과 백정들에게 성경을 소개하고 판매한 것이다.


그 후 1896년부터 1897년 12월까지 충청도와 전라도를 순회하였고, 강원도에도 성경을 판매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히브리어 능력을 활용하여 시편을 번역하여 1898년 삼문 출판사에서 시편 번역 성경 <시편촬요>를 출판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한국어로 시편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한글 최초의 구약성경 번역서로 인정받고 있으며, 시편의 음률을 살려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찬송가 번역에도 기여하였다. 1898년 출판된 장로교 <찬송시>에 피터스가 번역한 14곡이 수록되었고, 그중 5곡은 현재 찬송가에도 포함되어 있다.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75장 <주여 우리 무리를>가 대표 찬송이다.


그는 미국성서공회와 계약 기간을 종료하고 1898년부터 1899년 말까지 대영성서공회로 자리를 옮겨서 활동하였다. 그 후 미국에 가서 맥코믹 신학교 입학하여 3년 만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목사 안수받고 북 장로교 한국 선교사로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이 없는 이유로 한국 선교사로 선정되지 못하고, 1902년 필리핀으로 파송받았다.


필리핀에서 2년 사역한 후 1904년 5월 한국 선교사로 파송받아, 그해 9월 아내(엘리자베스 풀러)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돌아와서 1904년부터 1911년까지 7년간 서울 남부 지역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가 설립한 교회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심곡 교회, 세곡 교회, 둔전 교회, 내곡 교회, 양재리 교회 등이고, 시흥 산성 교회, 안양 동은 교회, 고양군 대현 교회 등이 있다.


그는 경기 남부 지방을 전도하는 동안 부인 풀러가 폐결핵으로 고통받다가 1906년 1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는 부인을 잃은 슬픔으로 더욱 순회 전도에 열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908년 의사인 에바 필드와 재혼하여 24년을 함께 사역하였다.


* 에바 필드는 1897년 10월 내한하여 세브란스 병원 여의사로 사역하던 중 피터스를 만나 결혼하였다. 그녀는 1932년 암으로 소천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는 성서 번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06 성서번역 위원회 정회원으로 선정되면서 히브리어 능력을 잘 활용하여 구약 성경 번역에 공헌하였다. 1910년 모펫과 함께 구약 번역을 완료하고, 1911년 출간하였다. 또한 게일이 만든 한영사전의 증보 작업을 추진하여 1911년 완성하였다.


그 후 1913년에서 1921년까지 황해도 재령에 거주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1922년부터 1926년까지 평북 선천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 후 1927년 서울로 돌아와서 사역을 지속하였다.


그는 1941년 70세에 은퇴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LA 근교 패서디나(Pasadena) 시에 있는 은퇴 선교사 주거 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58년 87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신은 파운틴뷰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한국 교회는 2017년 미국 LA 근교에 있는 그의 묘소를 찾아내어 방문하였고,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그를 기념하는 여러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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