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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필드, 세브란스 병원 초기 여의사로 활동

피터스 부인으로 재령, 선천에서 사역하고 양화진 안장

by 신재천

에바 필드 선교사(1868~1932)는 세브란스 병원 여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며 한국인 의사를 양성하였다. 또한 남편 피터스 선교사를 도와 성경 번역 및 재령 및 선천에서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녀는 미국 동부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나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성장하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아 의료 선교사로 비전을 가졌다. 1896년 노스웨스턴 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시카고 메리톰슨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그녀는 1897년 10월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서울에 와서 제중원에 배치되어 여성 환자를 치료하고, 동시에 세브란스 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였다. 이때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에스더 쉴즈와 함께 근무했다. 1898년 작성한 에바 필드의 일기가 남아 있는데 당시의 사회 상황을 이해하는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에스더 쉴즈는 한국 간호사의 대모로 불리는 선교사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사 양성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한국인 간호사를 육성한 선교사이다.


그녀는 서울 제중원에서 10여 년 근무하다가 1908년 피터스 선교사를 만나 결혼하였다. 결혼 후 자신의 의료 사역과 병행하여 남편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한영사전 교정, 구약 성경 번역, 한국어 찬송가 만드는 일 등 남편의 사역을 도왔다.


1913년에서 1921년까지 남편을 따라 재령에 가서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재령에서 성경공부를 위해 몰려드는 천여 명의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했다. 그곳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가르치며, 수학 교과서를 집필하였다.


그 후 1922년에서 1926년까지 평북 선천으로 이동하여 사역하였다. 1927년부터 서울에 돌아와서 세브란스 병원 의사와 동시에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1932년 7월 64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의 유해는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에스더 쉴즈는 추모글에서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묘비에는 Asleep in Jesus(예수 안에서 잠들다)로 기록되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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