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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터 쉴즈, 한국 간호사의 대모로 불리는 선교사

세브란스 병원에 간호원 양성학교를 운영

by 신재천

에스더 쉴즈 선교사(1868~1940)는 간호사 양성에 헌신한 한국 간호사의 대모로 불린다. 한국에서 40년 거주하면서 한국인 간호사 양성에 공헌하였다.

그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농촌 지역인 켈리티운십에서 태어나 1891년 필라델피아 간호원 양성 학교를 졸업했다. 해외 선교를 결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던 중 한국에 대한 설교를 듣고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그녀는 1897년 10월 북 장로교 선교사로 파송받아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제중원에서 간호사로 사역하면서 많은 환자를 돌보았다. 5년 사역하면서 몸이 약해져서 1902년 목포에 가서 잠시 휴양했다.


그리고 평북 선천으로 전임되어 1903년부터 1905년 7월까지 선천에서 전도 활동에 치중했다. 그리고 안식년이 되어 미국에 휴가를 다녀왔다.


안식년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1906년 9월부터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활동하였다. 그녀는 병원에 간호원 양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간호 소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감리회 병원인 보구여관의 에드먼즈와 협력하여 한국인 간호사를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함께 간호사를 교육하던 에드먼즈가 1908년 결혼하여 군산으로 이동하게 되어 그 후 혼자서 간호원 양성 일을 감당하였다.


* 세브란스 간호원 양성소는 안나 제이콥슨이 시작하였으나, 쉴즈가 실질적으로 간호사 양성을 시작하였다고 본다.


​* 마거릿 에드먼즈(1871~1945)는 캐나다 출신의 감리회 선교사로서 1902년 내한하여 1906년 보구여관 (이대부속병원)에서 2년간 교육하여 간호사 2명을 배출하였다. 최초 간호원 양성으로 기록된다.

1908년 그녀는 해리슨 선교사와 결혼하여 군산으로 거주지를 이동하여 20여 년간 호남지역 교회 개척에 헌신하였다.


1908년 <대한 졸업 간호원회>를 만들어 간호원 간 협력을 도모하고 간호학 교과서 편찬에도 주력하였다.

1926년 초교파적으로 간호부회를 재조직하여 간호원의 자질과 지위 향상에 노력하였고, 세계 간호학회에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40년간의 한국 간호사 역사 자료(사진과 글)를 모아서 프린스턴 신학교에 기증하여 현재 보관 중이다.

또한 친구이면서 세브란스 병원에서 함께 사역하던 에바 필드가 1932년 하늘나라로 떠나자 이를 슬퍼하는 추모사를 남겨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다가, 1935년 선교사 직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후에도 1936년 12월까지 세브란스 병원에서 봉사했다.


1939년 2월 그녀는 고향인 미국 루이스버그로 돌아갔다. 그리고 1940년 11월 고향에 돌아간 지 1년 9개월 만에 72세로 소천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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