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다 잘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남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기, 나에게 집중하기

by 신정원

솔직히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유학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떠올리면, 겨울이 다 되어가던 두 번째 학기의 어느 아침이 떠오른다. 거의 일주일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마지막 밤은 아예 밤을 새웠다. 두 손에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모델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5분 남짓이었지만, 그 길이 유독 길고 험난하게 느껴졌다. 몸이 너무 지쳐 속이 울렁거렸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모래사장을 걷는 것처럼 무거웠다.


결국 길 한쪽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아무도 나에게 밤을 새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였을까?


리즈디에서의 삶은 치열했다.

학기 초, 교수들이 본인의 연구 주제를 발표하면 학생들은 듣고 원하는 수업을 직접 선택해야 했다. 겉으로는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었다. 어떤 교수는 정말 배우고 싶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했고, 어떤 교수는 실험적인 접근을 요구하며 학생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싸움을 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영어였다.

매일 밤 건축 철학 책을 펼쳤다. 낯선 개념과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문장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아 여러 번 곱씹어야 했다. 원어민조차 해석하기 어려운 건축 이론을 내 언어로 정리하고, 다시 영어로 발표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 주장을 펼치고, 미국 학생들과 논쟁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말을 쏟아냈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날, 영어가 서툰 중국인 학생이 발표를 하고 있을 때, 강의실 뒤쪽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 없는 조롱.


그들은 노골적으로 비웃지는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 했다. 그러나 눈빛과 억지로 참는 미소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더듬거리며 한 단어 한 단어를 이어갈 때, 그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속으로 웃고 있었다. 그게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너무,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더 철저히 준비했다. 그 누구도 비웃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밤을 새워 아이디어를 드로잉으로, 모델로, 도면으로 쏟아냈다. 시각적으로 보여주면, 말이 서툴러도 그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밤을 새우던 어느 날, 미국 학생 몇 명이 내 자리로 다가왔다.

“와우, 이거 정말 멋있다! 어떻게 만든 거야? 어떤 걸 표현한 거야?”

제일 얄밉게 뒤에서 비웃던 그 학생이었다. 발표 때는 조용히 비웃던 그 입술이, 지금은 내 작업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논쟁에서는 나를 무시하던 그들이, 실질적인 디자인과 제작 단계에서는 오히려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스튜디오에는 밤과 낮이 없었다.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잠든 학생들,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운 친구들. 밤을 너무 많이 새운 탓에 쓰러지는 아이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상담을 받는 아이들, 심지어 자퇴를 결정하는 학생들까지 나왔다.

학교도 이를 알았는지, 미드텀과 파이널 기간에는 테라피 도그를 순환시켰다. 커다란 리트리버 강아지가 스튜디오에 들어오면, 학생들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는 개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돌렸고, 누군가는 개를 끌어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치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중간고사 발표 날이었다.

MIT 출신의 피도 눈물도 없는 교수님은 ‘페차쿠차’ 형식으로 발표를 하라고 했다. 슬라이드가 15초마다 자동으로 넘어가는 방식. 시간 안배가 필수였다. 그러나 내게는 너무 가혹한 조건이었다.

발표가 시작되자 긴장한 탓인지 말을 더듬었고, 슬라이드는 그대로 흘러갔다. 당황한 나는 패닉에 빠졌고, 결국 발표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뒤쪽에서는 미국 학생들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날 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진짜 속상했겠다… 근데 넌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아. 어떻게 한 번에 다 잘하려고 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번에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 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기로. 비웃음과 조롱에 흔들리는 대신, 더 나은 나가 되는 데 집중하기로.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완벽함’이 아니라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앞서 나가려던 내가, 천천히 가도 결국 도착할 수 있음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 힘든 유학생활을 끝까지 해냈다.

나는 더 이상 한 번에 모든 걸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끝까지 나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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