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엔 마라탕인가

부모의 신용등급

by 소소

지금의 중학생 큰아이가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내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전라도로 향했다

오랜만에 멋을 내고 장거리 외출이었던지라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엔 너무 아쉬웠던 난 근처 전주 한옥마을에 가보자 했었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아 애기띠에 인형처럼 안겨있는 둘째와 큰아이를 데리고 가기엔 때와 장소가 우리 부부에겐 모험이었다.


평소 같으면 남편의 표정만 보고도 싫음을 눈치채고 포기를 했겠지만 어떤 용기였는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역시나 그곳은 가는 골목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나름 큰길로 나왔을 땐 어디 광장에서나 볼법한 댄스 무리가 그 시절 빌보드에 올랐던 싸이의"강남 스타일"노래에 맞춰 말춤을 추고 있었다.

군중을 헤치고 나가야 했던 우린 큰아이는 남편이 챙기고 난 사람들에 부딪히지 않게 작은아이를 안고 빠져나왔다. 하지만 남편이 챙기고 있을 거라 생각한 큰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가 어디 갔냐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남편만 있을 뿐이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남편은 나름 높은 곳으로 올라가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나 춤추는 사람들과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로 주변은 혼란 자체였고 그 상황에 어린아이가 쉽게 보일 리 없었다. 절망 불안감 짜증이 한데 모여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금씩 손이 떨리며 이 주말에 여길 오자고 한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이의 손을 잡지도 않은 남편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이렇게는 안될 것 같아 근처 노점상 주인분께 여기 관리실 같은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누가 봐도 반쯤은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아이 엄마가 울먹이며 물어보니 위로를 하시며 괜찮다고 진정하라며 금방 찾을 수 있다며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방송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하셨다

그렇게 허겁지겁 가려는 순간 스피커에서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남편과 내 이름이었다. 자녀를 보호 중이니 관리실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과 당혹감으로 한달음에 관리실로 가보니 의자엔 큰 아이가 말간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 당시 한옥마을에선 말을 타고 경찰분들이 안전을 위해 돌아다녔었는데 마침 혼자 떨어져 있던 우리 큰아이를 발견하고 여기에 데려다 주신 거였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연신 인사를 하고 아이에게 무섭지 않았냐 어디로 갔었냐 여러 질문을 했지만 아이는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는 한마디만 남겼다


"엄마 아빠가 나 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간 줄 알았어"


놀라웠지만 그 순간엔 그 장소를 벗어나고픈 생각이어서 얼른 아이를 데리고 한옥마을을 빠져나왔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따져 묻진 않았지만 우리가 걱정을 했을 거라 생각지 않았던 아이 마음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얼마 전 아웃백 식전 빵과 비슷한 빵을 얻어와 식탁에 올려놓았는데 외출했다 돌아온 큰아이가 그 빵을 보더니

"아웃백 갔다 왔어?"

난 무슨 소린가 싶어서 아이의 시선을 따라 식탁을 보고는 그제야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아니라고는 했지만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눈초리를 날리더니 "갔네 갔어"한마디를 남기고 쌩하니 가는 아이를 보고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 아이는 많이 성장했지만 우리 부부의 신용은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가끔 엄마 아빠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고 있지? 물어보면 모르겠는데 라는 말만 남기곤 가버리기 때문이다.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큰아이는 요즘 유난히 나와 충돌이 잦다.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며 그나마 큰소리가 나지 않는 시간들도 대부분 냉랭한 분위기의 나날들이다. 쌩하니 가버리는 뒷모습에 어른인 나조차도 눈을 흘기게 되는 상황 속에 한계점이 차오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지금 현재 이렇게 건강하게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려 애쓰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마라탕을 주문해 달라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사 먹는 마라탕을 감당할 수 없어 쟁여놓은 마라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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