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물어보겠어

트라우마를 덮어쓰는 방법

by 텔테일telltale

겨울방학이 되었다. 엄마는 수술 전 몸조리가 필요하다며 외할머니댁으로 가기로 했다. 일곱 살이던 동생도 함께.


"엄마 아프다는 거, 남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왜?"


"넌 생각도 없니. 암환자라고 하면 남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겠어?"


엄마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너무나도 자명한 이치인 것처럼 말했기 때문에, 모르는 내가 바보인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 말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엄마는 바쁘게 움직였다. 챙겼던 옷을 도로 집어넣기도 하고, 뭘 깜박했다며 다시 베란다로 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따라다녔다. 엄마가 아프게 된 건 내 잘못이니까, 무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무얼 챙기면 좋을까? 세면도구? 잠옷? 물건들을 살펴보며 서성대다 급하게 방 안쪽에서 돌아 나오는 엄마와 부딪혔다.


"아, 좀 비켜!"


"미안..."


"너는 이런 때도 멍해갖고 정신을 못 차리니?"


엄마가 분주하게 굴수록, 내 마음속 불편감은 커져갔다. 답을 꼭 들어야만 하는 질문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물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너무 바빠 보여서, 무슨 말을 해도 튕겨져 나올 것 같았다.


하고픈 말을 꾹꾹 누른 채 어영부영하는 동안, 엄마는 채비를 마쳤다. 엄마가 신발을 신는 순간까지도 나는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집 더럽히지 마. 안방 들어가지 말고."


현관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그리곤 돌아섰다.


안 갔으면 했다. 내가 하고픈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길 원했다. 팔을 뻗어 붙잡는다면 시간을 잠시 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용기를 쥐어짜 냈다.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였다.


"엄마, 혹시..."


하지만 제대로 운을 뗄 수 없었다. 엄마의 핸드폰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내 모기만 한 목소리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엄마는 한 손에 핸드폰을, 다른 손에는 가방을 든 채 그대로 나가버렸다.


닫힌 현관문 너머로 엄마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와 계단참에 반사되어 웅웅 울리던 소리는 이내 사라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버린 듯했다. 방금까지 분주했던 집안에는 적막만이 남았다. 엄마가 나가면서 집안의 모든 것이 같이 떠난 것 같은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집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장소에 홀로 남겨졌다는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가렵지도 않은데 팔다리를 벅벅 긁었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방에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다가 거실까지 걸어 나오기를 반복했다. 집 안을 열댓 바퀴쯤 돌았을까, 문득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일러를 틀어도 따뜻해지질 않아서, 옷장을 뒤져 긴팔을 두 벌씩 껴입었다.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웃풍 때문에 결국 겉옷까지 꺼내 입었다. 그렇게 잔뜩 껴입고 추운 방 안에 앉아있자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손이 시려 옷소매를 끌어내렸다. 잠과 의식의 경계선에서 엄마와 나눈 말들을 생각했다.


밥 잘 챙겨 먹어. 옷 따뜻하게 입어. 공부 열심히 해. 착하게 있어. 연락할게.


왜 우리는 그런 평범한 인사를 나누지 못했을까.


만약 엄마가 따뜻한 작별인사를 건넸더라면, 나는 물을 수 있었을까?


엄마는 나 원망해? 라고.


아니, 아마 묻지 못했을 것이다. 답을 듣는 순간 나는 견디지 못하고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물을 것이 분명하니까.


제대로 말할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는 불길한 예감이, 불쑥불쑥 졸음을 걷어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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