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덮어쓰는 방법
"집 꼬라지가 이게 뭐야? 넌 제대로 씻었니? 어휴 냄새. 늙은이 냄새하며 니 사춘기 호르몬 냄새 하며 역겹다 역겨워!"
그것이 집에 돌아온 엄마의 첫마디였다. 엄마는 수술 후 외할머니댁에서 몸조리까지 마치고 4월 말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돌아온 엄마는 코를 싸쥐고 집안 온 곳곳을 환기시키기에 바빴다. 늙은이 냄새란 아마도 그동안 나와 동생을 돌봐주셨던 친할머니 체취를 가리키는 듯 했다.
"봄이라 황사 아직 있는데..."
"황사보다 냄새가 더 독하다 독해! 너는 그동안 집안일 잘 챙겼다더니, 내가 오자마자 이런것부터 신경쓰게 하니! 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너 작년에는 이런 냄새 안 났는데, 사춘기 여드름 냄샌가. 뭘 멍하니 서있어. 가서 샤워 한번 더 하던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샤워 다 했어!"
반갑다는 인사는 커녕 냄새나는 세균 취급을 당하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몇 개월만에 만난 엄마라는 생각은 저만치 잊혀졌다. 병문안을 가지 못했던 날,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에 대한 생각도 하얗게 사그라들었다. 눈앞의 엄마는 그저 숨막히는 잔소리꾼이었다. 짜증이 머릿속을 까맣게 색칠했다.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얘! 먼지바람 다 들어오는데 무슨 창문을 그렇게 다 여니."
재빠르게 엄마를 뒤따라가 창문을 도로 다 닫아버린 것은 둘째이모였다. 커다란 안경을 항상 쓰고 다니는 그녀는 다른 이모들과 달리 모난 성격이 아니었다. 외할머니댁에서 엄마를 바래다주러 들른 둘째이모는, 나에게 억지미소를 지어보였다.
"엄마가 수술하고 난 직후라 예민해서 그래. 냄새는 뭔 냄새야 밖에 황사 먼지구덩이에 있다 와놓구선."
장난스레 말하며 둘째이모는 내 손에 만원짜리 몇장을 쥐여주었다. 난 눈물과 함께 나오려던 콧물을 들이켰다.
"아우, 언니. 재성이도 사춘기때 이런 냄새 났어? 얘는 여자앤데 왜 이렇게 냄새가 독해. 같이 못있겠어 진짜."
"얘는 유난이야. 지가 낳아놓구."
둘째이모는 계속 장난스럽게 말을 돌렸지만, 엄마의 모든 말은 내 가슴에 박혔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은 그 누구에게 들어도 기분좋은 말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자존감을 깎아먹는 말이었다. 내가 딛고 있는 중심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야, 너 오늘부터 니 방 가서 따로 자."
"어? 나 이불은?"
"깔거 줄테니까 따로 자."
둘째이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트집을 잡혀 가족과 따로 자게 되었다. 원래 가족들 모두의 침대는 안방에 있었는데, 나만 침대 없이 이불만 깔고 방에서 자게 된 것이다.
내쫓긴 기분이었다. 그것도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인도의 불가촉천민으로 강등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내 몸 곳곳의 냄새를 계속 맡아보았다. 내 교복 냄새와 옷 냄새도 맡아보았다. 섬유유연제 냄새와 희미한 비누 냄새 외에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밖혀 있었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서 자주 장난치고 놀던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내 옷에서 냄새나?"
"왜? 누가 냄새난대?"
"아니, 그냥 신경쓰여서."
"모르겠는데?"
"응... 혹시 맡아볼래?"
내 불안한 표정을 읽었는지, 친구는 약간 몸을 뒤로 뺐다.
"으, 그건 좀 싫어."
"응..."
그 다음 시간은 국어 시간이었다. 나이 많은 여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수업 도중, 우리들이 너무 조는 것 같다며 갑자기 스트레칭을 시켰다. 목을 돌리고 어깨를 으쓱하는 동작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팔을 번쩍 위로 올리는 동작이었다. 그렇게 하면 겨드랑이가 노출되니까.
겨드랑이는 엄마가 어릴때부터 힘을 주어 벅벅 씻기던 부위였다. 거기다 어제 엄마의 '냄새난다'라는 말까지 더해져, 나는 순간 망설였다. 학급 안에서 머리 위로 두 팔을 올리지 않은 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나를 지목했다. 내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뒤늦게 두 팔을 올려보았자 때는 이미 늦었다. 아이들은 눈치를 채고 킥킥댔다. 그 다음 쉬는시간, 내가 친구에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요구했다는 식의 말이 학급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반에서 냄새나는 아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