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텔테일telltale Nov 26. 2023
"애비가 미안하댄다. 너 용돈 주고 갔어. 애비가 힘들어서 그래. 얼마나 힘들것냐. 점심밥 먹다말고 회사호출와서 내려갔어."
그날 오후, 친할머니는 동생과 함께 돌아왔다. 집안의 적막이 다시 깨진 것은 달갑지 않았지만, 엄마의 상태가 궁금했다.
"잘 못먹드라. 옆에두구 좀 먹으랬드만. 도로 가져가래서 갖구왔다. 너 좀 먹을래?"
솥 안에는 우리가 어제 열심히 고았던 장어가 담겨있었다. 의외였다. 상상과 달리 장어는 곤죽이 되어있지 않았다. 탄탄한 몸태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살점을 떼어주는 대로 거부감 없이 받아먹었다. 살점은 입안에서 녹아 사라졌다.
"맛있는데. 수술 땜에 못먹는 거 아니에요?"
"징그럽디야. 갈아서 죽으로 만들어 줘야겠어. 어죽처럼. 유난이여 유난. 몸에 좋으라구 통으로 고았더니만."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살아있는 꽃게도 손질하지 못하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와병 와중에도 유난 떤다고 한소리 듣는 게 마음이 안 좋았다. 어릴 적 엄마에게 심어진 친할머니에 대한 악의가 슬며시 피어올랐다. 마음이 완전히 틀어지기 전에, 나는 재빨리 부엌에서 걸어 나왔다.
"언니!"
거실에 앉아있던 동생이 달려와 내 다리를 껴안았다. 난 동생을 슬쩍 밀어냈다. 엄마는 동생 양육의 대부분을 나에게 맡겼었다. 공부도, 놀이도, 식사도. 잘했을 때는 당연한 거였고, 잘 못할 때는 모두 내 잘못이었다. 동생이 말을 안 들을 때면 나를 닮아서 그런 거라며 내가 대신 혼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저리 가."
"나 과자 받았어. 엄마가 줬어."
"저리 가라니까."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으로부터의 구원이라 생각하고 달갑게 받았지만, 오산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앙칼졌다.
"외숙몬데."
"네..."
"인사 안하니?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니? 어른이 전화하면 인사부터 해야 할 거 아냐."
"안녕하세요."
"내가 지금 엎드려 절 받니?"
"죄송합니다..."
"저녁에 셋째 이모랑 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일방적 통보였다. 몇 시에 온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해가 지기까지, 나는 좌불안석으로 거실을 서성였다. 동생이 보는 TV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마트에 다녀온다며 주섬주섬 장바구니를 챙겼다.
"할머니..."
"금방 갔다오께. 너네 저녁 찬거리도 읎다."
본능적으로 친할머니가 유일한 방어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리고 두 여자가 들어왔다. 외숙모와 셋째 이모였다. 그 둘을 본 순간 내 뱃속이 삼각형으로, 다각형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뱃속이 쿡쿡 찔렸다. 불쾌하고 거북했다. 토할 것 같이 불안했다.
"둘이 앉아봐."
그게 셋째 이모의 첫마디였다.
"엄마 상태 알지? 왜 그렇게 됐는지도 알고?"
그렇게 말하며, 두 여자는 나를 동시에 쏘아보았다. 네 개의 눈동자가 한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다. 무어라도 답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게워내듯 답했다.
"죄송합니다..."
"너네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특히 너. 너는 장녀니까 이제 처신 제대로 해야 하는 거야."
셋째 이모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찔릴 때마다 통증과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불쾌함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한 예진이. 이제 겨우 8살인데 돌봐줄 엄마도 집에 없구..."
나를 쿡쿡 찔러대던 손으로, 셋째 이모는 동생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아침에 외숙모가 학교 데리러 집 앞까지 와줄 거야. 예진이는 친할머니가 옷 입혀주면 그거 입구 집 앞으로만 나오면 돼."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15살이 된 내가, 8살 아이의 취급을 부러워한다고 고백한다면 모두가 비웃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나에겐 모진 말과 손가락질밖에 오지 않았으니까.
"너. 동생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
마음을 읽은 외숙모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초등학교 선생인 그녀는 평소에도 너 이렇게 생각했지!? 라며 애들 마음을 읽은 척했는데, 하필이면 걸렸던 것이다.
"아, 아뇨..."
"아니긴 뭐가 아냐! 눈에 딱 써있는데! 넌 애가 철딱서니가 없니? 니 엄마 앓아눕게 만들어놓고 친척들이 동생 챙겨주는 게 좋아 보여!?"
집중포화는 몇 분이고 계속됐다. 늙은 여우들이 사냥감을 몰이할 때 나는 소리 같은 게 났다. 포위된 나는 토끼처럼 심장이 뛰었다. 눈을 감을 수도 없었고, 달아날 곳도 없었다.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체감상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머릿속에는 내 잘못이라는 한 단어만이 남았다. 그 자리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중년 여성의 고함소리는 아직도 내게 트라우마 트리거로 남아있다. 가슴이 쿵쿵 뛰고 속에 있는 걸 게워내고 싶은 불쾌감이 들게 한다. 머리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어야 하는 그때로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