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2월의 어느 날이었다. 봄방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현관이 여러 사람들의 신발로 어수선했다. 혼자 있을 때는 틀어두지 않는 TV가 켜져 있었다. 주방에서는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나는 어색함에 잠시 머뭇거렸다.
"왔냐.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아빠가 친할머니를 모시고 집에 와있었다. 집안은 여러 냄새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체취와 음식 냄새들이었다. 식탁에서는 친할머니가 보온통에 죽을 덜고 있었다. 여러 반찬통과 뚜껑이 즐비했다.
"안녕하세요."
"응 그래. 학교 잘 다녀왔어?"
내가 인사를 올리기도 전부터, 할머니는 날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포옹을 슬며시 피했다. 할머니에게선 말린 대추를 삶은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말린 대추였다.
"아빠는 외할머니댁 가서 동생 데려올 테니깐, 넌 할머니랑 가서 시장 갔다 와라."
아빠가 내 뒤쪽으로 쿵쿵대며 걸어갔다. 근 두 달 만에 만난 것이었지만, 반가운 인사나 포옹은 없었다. 그것이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감정을 목 아래로 쑤셔 넣었다.
"할머니랑 먼저 가자. 늦게 가면 문 닫는다."
집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난 뒤에야 나는 물었다. 할머니와 아빠는 목적을 알고 척척 움직이는데, 나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보임을 알리는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시장엔 왜요?"
"느이 엄마 수술 마치고 인제 일반병실로 옮기니까는. 보양식으로 장어 고아멕여야지."
나는 대답 없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짜증이 났다. 그리고 내가 이 짜증을 느끼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다. 필사적으로 양쪽으로 눈알을 굴렸다. 그러면 왠지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속을 모르는 할머니는 말을 이었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예진이가 편지 써줬다매. 수술 잘 받고 오라고. 예진이 한글 다 뗐나. 느이 엄마가 수술 전날에 전화하데."
아무도, 나에게 엄마의 수술 진행상황을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혼자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받았던 연락이라고는 밥 사 먹을 돈이 충분하냐는 아빠의 전화뿐이었다. 나머지 가족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지냈을 텐데, 자책에 빠진 나는 단절되어 지냈다는 사실에 입맛이 썼다.
가족으로부터 내가 철저히 배제된 기분이었다. 왜? 내가 엄마를 암에 걸리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그런 주제에 적극적으로 엄마와 가족들에게 빌지 않아서?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재빨리 옷소매로 훔쳐냈지만 바로 그치질 않았다. 모직 재질의 코트 소매는 까슬까슬해서, 턱은 곧 새빨갛게 쓸렸다.
"내리자. 얼른."
노선도에만 집중하고 있던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도착한 시장은 유치원 때의 기억과 달리 좀 더 한산하고 냄새나는 곳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그곳을 돌고 돌아 장어 한 마리를 골랐다. 내 팔뚝보다도 두껍고, 기다란 놈이었다.
"이걸 12시간을 푹 고는 거야."
"양념도 해요?"
"어휴, 약으로 먹는 걸 왜 양념을 해. 이거를 통째로 고아서 먹으면 보약이여."
할머니는 상인과의 흥정에서 성공한 후 계속 신이 나 있었다. 나는 장어가 담긴 봉투가 혹시라도 터질까 조마조마했다. 머릿속에서는 봉투가 터져 버스 안이 물바다가 되는 상상과 탈출한 장어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싱크대에 장어를 풀어놓고 나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장어를 어떻게든 씻겨내는 할머니의 손길을 옆에서 신기하게 구경했다.
"인제 할머니는 힘이 부쳐서 안되니까, 니가 해야헌다."
단단히 마음먹고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 두 군데 있었는데, 첫 번째는 솥에 살아있는 장어를 넣고 뚜껑을 닫는 것이었다. 크기가 크기인지라 조금만 타이밍이 안 맞아도 장어의 꼬리가 뚜껑을 쳐냈다. 솥이 좀 달궈진 이후에는 기절한 장어 위로 물을 부어야 했는데, 장어가 깨어나 몸부림을 치고 솥을 뒤흔들었다.
"살아있는 것의 정기를 빼앗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거여."
어느덧 얌전하게 끓기 시작한 솥뚜껑을 보며,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장어의 비늘과, 피와, 눈알과, 수염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것이 뒤죽박죽 된다면 역겨울 것 같았다. 맛있는 부위는 살점밖에 없을 텐데, 그것만 먹으면 안 되는 걸까.
"한번 끓고 나면 불 줄여서 다시 끓여야 된다."
기이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할머니를 지독히도 싫어했다. 오죽하면 나의 할머니에 대한 첫 기억은 엄마의 입에서 나온 욕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새끼오리가 어미오리를 따르듯이, 나도 자연스레 할머니를 멀리했다. 할머니도 그걸 아예 모르지 않을 텐데, 이 정성을 쏟는 게 쉬울까.
"가서 컴퓨타 해도 된다."
"아니에요."
장어가 고아지는 냄새는 수증기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가스레인지 근처로 식탁용 의자를 두 개 끌어다 놓았다. 할머니와 나는 나란히 앉아 불을 지켰다. 말은 몇 마디 오가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에 대해 품고 있었던 이유 없는 악의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는 이른 아침에 돌아왔다. 새벽에 잠든 나는 아직 자고 있었다. 아빠가 급하게 날 깨웠다.
"야, 빨리 일어나라. 동생도 차에서 기다린다."
나는 미적거렸다.
"... 왜, 10시에 간다며."
"아빠 오늘 밤에 비상근무라 엄마 병동 들렀다 내려가야 한다. 지금 후딱 가야 돼."
"응…. 알겠어…."
나는 그렇게 답해놓고 영 일어나질 못했다. 아침에 잘 깨지 못하는 나를 서너 번쯤 깨우는 것은 집안 관례였다. 문제는, 이젠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나만 몰랐다는 것이었다.
따뜻한 이불속에 덮여있던 내 두 발목이 거칠게 붙잡혔다. 무슨 일인가 깨달을 새도 없었다. 그대로 몸 전체가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아프기도 했지만 정신이 없었다. 삽시간에 천지가 뒤집어졌으니까. 뭐냐고 항의할 새도 없었다. 바로 머리맡에서 아빠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가! 니가 맨날 아침마다 이딴 식으로 엄마를 괴롭히니까 니 엄마가 암에 걸린 거 아냐!"
잠이 덜 깬 상태로 바닥에 부딪힌 코가 얼얼했다. 잠을 더 자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바닥에서 일어나려는데 발길질이 날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아빠는 내 어깨를, 가슴을, 복부를, 허벅지를 마구잡이로 걷어찼다.
"딸이라는 새끼가! 장녀라는 새끼가! 어떻게 지 엄마 병문안을 가는데! 처자빠져 잠이나 퍼자고! 일어나라는데 정신도 못차리고! 쓸모없는 새끼!"
당연히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도 나는 쓸데없는 부분에 화가 나서 소리를 바락 질렀다.
"10시에 간다며!"
"니가 사람새끼야?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는 지금 니 엄마 돌보느라 회사 내려갔다가 병원 갔다가 장모님댁갔다가 정신이 없는데 니놈 새끼는 아주그냥!"
그건 두달동안 엄마아빠가 날 가족에서 배제시킨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이제껏 열외로 둬 놓고서, 지금은 가족으로써의 태도가 잘못됐다고 꾸짖는 것 또한 모순으로만 느껴졌다. 나는 악에 받혔다.
"그럼 안가!"
삐이-. 하고 이명이 들렸다. 아빠가 내 머리통을 발로 찼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에는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빠는 내 온몸을 발로 밟았다. 옆에서는 할머니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개 같은 새끼! 짐승 새끼! 그냥 너 죽는 날로 해! 너는 사람이 아니야!"
보다못한 할머니는 결국 나와 아빠 사이에 드러누워 울었다.
"아이구 애비야! 나 죽는다! 내가 죽어어!"
할머니가 아빠를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간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명이 가실때까지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거실 밖으로 나왔다.
적막이 반갑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집안을 그리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