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한다
초등학교 급식실에는 6인용 식탁들이 열을 맞춰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 한가운데 접시가 놓여 있었고 여러 사람이 먹을 김치가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년이나 3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그날 반찬으로 가지무침이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가지무침이라 먹기 싫어 김치 그릇 밑에 가지를 숨겨놓았다. 그러곤 몰래 급식실을 나오는데 영양사 선생님에게 딱 걸렸다. 많은 아이들 앞에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혼나서 무서운 것보다 창피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아직까지 머릿속에 영양사 선생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옆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날 이후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반찬이 가지가 되었다.
그렇게 가지를 싫어하는 꼬마는 20살이 넘도록 가지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곤 군대 입대했다. 군생활이 1년째 접어들 때 KTCT라는 과학화 훈련을 앞두고 부대 자체 훈련에 힘들던 시기였다. 이 KTCT 훈련은 실제 센서를 총과 몸에 두르고 사망, 적폭탄 낙하, 화생방 등의 여러 상황을 가장해 북한군 부대(실제론 우리 아군)와 훈련을 하게 된다. 죽으면 시체가방에 누워야 하고 밥차가 폭파되면 실제로 굶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훈련이었다. 그 훈련을 대비한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진지를 구축하고 대기하는데 행보관님이 밥차 폭파 상황을 전파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쫄쫄 굶었다. 모래라도 퍼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몇 시간 후 부대원을 굶게 할 수는 없었는지 식사가 보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분대 후임이 밥이라고 아주아주 커다란 비닐에 5명분 밥과 한 가지 반찬을 가지고 왔다. 아니 버무려왔다. 그 주인공 반찬이 바로 가지였다. 밥은 흡사 블루베리 밥처럼 보랏빛에 빛나고 있었고 그 미끌미끌해 보이는 속살이 밥들과 섞여 있었다. 아주 찐한 검정 껍질까지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허겁지겁 퍼먹었던 기억은 난다. 맛을 본다기보다는 배를 채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그 이후로 나는 가지를 더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굳이 먹고 싶디 않던 가지였다. 평생 그 맛을 몰라도 나는 후회하디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작은 소신이 배고픔 앞에 처절하게 무너지게 되었다. 어쩜 그래서 나의 머릿속은 가지의 맛 따위는 기억 저 깊은 곳에 숨겨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청년은 그 후 가지 반찬을 제일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 심심치 않게 가지가 식탁에 오른다. 아내는 정말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하지만 나는 늘 거부한다.
설령 가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해도 나는 그 맛 모르고 살아도 괜찮다. 이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