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참 어린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이 아닌 어른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서. 순간, 내가 어른은 맞나 싶었다. 어른으로써의 조언을 바란다면, 그게 무엇이든 해 줄 자신이 없었다. 나도 아직 어른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1인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내가 어른으로써의 얘기를 제대로 해줄 수 있을지, 그건 모르겠어. 그래도 얘기하고 싶으면, 와."
분명 자신 없는 말투로 나의 생각을 밝혔음에도 그 친구는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빛나는 젊음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느껴졌다. 동시에 나의 20대가 떠올라 살짝 설레었다.
"어서 와."
"안녕하세요."
설레는 마음도 잠시,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40대와 대화는 늘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이런 걸 하고 싶다 얘기하면 저런 것 때문에 힘들 것이라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요런 생각을 얘기하면 혓바닥을 차며 허황된 생각이라 지적했다. 어른들의 말은 60%가 걱정이었고, 40%는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 추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 없게 하는 대화법이 어찌나 답답하던지. 당시의 40대와 지금의 내가 확실히 다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오늘의 초대가 괜한 짓은 아니었을까 걱정스러웠다.
대화의 물꼬는 근황으로 시작되었다. 20대답게 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기특했고. 소신 있는 생활방식이 믿음직스러웠다. 딱히 어른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잘하고 있는데."
"음. 그런데요. 이제 곧, 제가 30대가 되니까요. 이대로 제가 하고픈 걸 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워서요."
"응?"
"친구들은 이제 안정적인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저만 이뤄낸 게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건가 싶기도 해서요."
살면서 내내, 내가 이뤄낸 것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더랬다. 객관적 성과로 따지자면, 40대가 된 지금도 딱히 이뤄낸 것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다. 이렇다 할 명예와 부, 그 어떤 것도 손에 쥐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 잘못 살아왔냐를 생각하면, 그 역시 아니다. 글 쓰는 직업이 갖고 싶어 그 언저리에서 늘 노력했던 덕에 교양프로 작가로 일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언저리에 일했던 시간이 꽤 있어서 작가가 되기까지 멈칫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왜 언저리에서 일을 했을까 후회하는 시간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렇다 한들 내가 보내온 시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허투루 쓰고 있진 않을 거야. 너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너의 노력으로 쌓은 시간이 지금은 별 거 아닌 거 같아 보여도, 나중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 그리고, 시작점이 다른 누군가와 너를 자꾸 비교하지 마. 너도 알잖아. 그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거. 나는 그렇던데."
말은 그럴싸하게 던졌지만,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는 게 쉽지 않다. 내가 보낸 시간에 대해 확신을 갖는 일도 어렵다. 40대를 넘어 곧 50대가 되어가는 지금도 비교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고, 내 시간을 허투루 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할 때도 많다. 여전히 뭘 모르는 40대의 말이, 20대에게 잘 전달이 되었을는지 모르겠다. 그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랐고, 나와 같이 남과 비교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진심만 전달되었길 바랄 뿐이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는 동안, 내 시간이 버려졌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글쓰기 작업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던 탓에 더더욱 그 생각이 강했다. 사회생활하며 멋지게 살아가는 친구의 SNS 볼 때마다 어찌나 비교하게 되는지. 나만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두 아이를 보며 내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중심이 내가 아닌 엄마였을 뿐이고,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시간이었으니까.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일 뿐,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은 버려지는 게 아니라는 걸 어린 친구도, 나도 잊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