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시간 외출을 했더랬다. 늦은 시간 거리는 아침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고, 드문드문 스쳐가는 사람들도 하루의 마무리를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무심히 동네 이곳저곳 시선을 돌리며 걷는데,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추려는 듯 회색 후드집업과 검은색 바지를 입은 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린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내 시선이 그녀에게 머문 이유는 딱 하나, 속도 때문이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혼자 멈춰있는 것 같은 걸음,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듯한, 세 발자국 걸어 뒤돌아보니 겨우 한 걸음 옮긴 것 같은. 마치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그녀는 인도와 차도의 경계석조차 넘기 힘들어 보였다.
-괜찮을까?
그녀를 보자마자 든 첫 번째 생각이었다. 쓰러질 듯 걷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 부축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덕분에 가던 걸음도 멈춘 채 그녀가 걷고 있는 걸 잠시 지켜보았다. (그녀가 내가 보고 있는 걸 알았다면 더 무서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떤 하루를 보낸 것일까?
두 번째 든 생각은 그녀의 하루에 대한 상상이었다. 기분 좋게 출근했지만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하루가 있지 않은가. 예상치 못한 일로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았다던가. 그동안 이끌어왔던 프로젝트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멈췄다던가. 등등의. 씁쓸한 하루에 쓰디쓴 고배를 마셨다면, 그녀의 속도가 충분히 공감된다.
-아무 일도 없기를.
세 번째 든 생각은 설마와 상상이 어우러져 나를 복잡하게 하는 일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느낌 말이다. 아주 오래전,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던 적이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공포까지 더해지면 고통이 2배가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즈음은 꽤 여러 번 안 좋은 상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녀가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제발, 시간에 기대어 좀 더 버텨보기를 바랄 뿐이었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잠시 머리를 흔들었다. 늦밤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거 같아서. 이런저런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나 때문에 그녀가 괜한 소재가 된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나의 생각과 다르게 그녀는 좀 피곤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때때로 살아가다 보면 온몸의 에너지가 발끝으로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인생이란 녀석이 워낙 변수를 많이 만들어내는터라 어느 때는 스리슬쩍 넘어가고, 어느 때는 참 고약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게 사실이다. 어설픈 조언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힘내라, 이겨낼 수 있다는 등등의 말도 조심스럽다. 캄캄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데, 방향도 뭣도 모르겠는데 거기다 대고 이겨내라고 한들 이겨지겠는가. 거기다 대고 힘내라 한들 힘이 날까.
물론 나 역시, 고약한 일을 여러 번 겪은 이후로 어설픈 조언을 날려본 경험이 있다. 나의 경험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과 마음이라는 걸 알아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언제든 들어줄 준비는 하고 있다. 듣고, 내 말을 얻지 말자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저.....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