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원두가 어떻고, 로스팅이 어떻고, 바디감이 어떻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주 뿜어낸다. 로스팅까지야 어떻게든 알겠지만, 바디감이라는 건 아직도 모르겠다. 물론 친구 덕에... 에티오피아, 케냐 AA, 콜롬비아 같은 이름들과 대면했고, 없던 지식이 생겼으니, 친구 이야기가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친구가 내 앞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내놓은 건,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커피에 관심 있는 줄 알았지만,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딸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었다.
"회사 그만두고, 카페 하려고?"
당시만 해도 바리스타 자격증이 흔하지 않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은 카페를 창업하겠다는 의지와 비슷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당연히 친구가 카페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을 거라 생각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냥. 그냥 해보고 싶었어."
그냥이란 대답과 친구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로 봐서. 커피를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구나 싶었다. 그저 좋아하는 걸 더 알아보고픈 마음이라니. 아메리카노는커녕 믹스커피조차 쓰다 하여, 마시지 않던 나에게 친구의 대답은 놀라웠고, 또 궁금했다.
"커피가 그렇게 좋아?"
"응. 해 봐. 재밌어."
명동 한복판, 복잡하게 놓여있던 테이블, 어두운 조명. 그날 친구와 바리스타 자격증을 이야기했던 카페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친구에 이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보겠다 했던 말을 지키지 못한 나의 부채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친구가 주었던 자격증 책도 얼마 전까지 책꽂이에 있다 정리되었다.
미련을 없애려 책까지 정리해 놓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의 일인데, 나도 모르겠다.
"남편, 나 바리스타 자격증 학원 등록하려고."
"응?"
"한다."
친구는 혼자 이론 시험을 보고, 실기만 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나에게도 그렇게 하는 게 훨씬 괜찮을 거라 조언해 주었지만, 나에게 혼자 공부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 일단 학원 등록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친구가 준 책을 여러 번 펼쳐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내 읽는 것만 반복하니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낯선 용어를 소화시키는 것도 꽤나 버거웠다. 그렇게 남편에게 공개선언을 하자마자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을 마쳤다.
이 즈음 내 머릿속에 있던 말은, '그냥 해~.'였다. 그동안은 이런저런 생각, 다양한 경우의 수, 최악의 최악을 생각하느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세상의 온갖 변수를 예측할 수 없음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두려움과 걱정을 증폭시켜 발목을 잡았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일지도.
그냥 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그렇게, 오늘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수업을 받았다.
학원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머신과 로스팅기계였다. 복잡한 버튼과 생김새가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고소한 원두향이 그럼에도 겁을 먹지 말라 토닥여주는 기분이었다. 어렵지 않을까 걱정스럽던 수업은 생각보다 이해하기 쉬웠고, 2시간 강의는 지루하지 않았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이토록 설레는 일이었다는 걸 오랜만에 다시 느낀 하루였다. 덕분에 자격증 시험에 떨어질까 걱정되던 마음도 다행히 잔잔해졌다.
그 무엇보다, 내가 처음으로 내린 에스프레소의 맛이 아직 혀 끝에 남아있는 것 같아 즐겁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음이 설렌다. 정확히 들떠 있다고 해야 할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다음 강의는 지루해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배움의 설렘이 아직 남아 있음에 감사하고,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에 두근거린다. 생각에 사로잡혀 두려움을 쌓기보다 용기 있게 행동으로 옮겨 경험치를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걸, 오늘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