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오트밀 니트에 흰색 바지를 골라 입는다. 가방에 골드 포인트가 있으니, 귀걸이는 골드로. 그렇게 거울 앞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옷차림에 꽤나 신경 쓰는 편이다. 전업주부인 지금도 그렇지만 직장인이던 시절에도 많은 신경을 썼더랬다.
'너무 말라 보인다.'
'다리가 짧아 보여.'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다음날부터 말라 보이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고, 다리가 길어 보이기 위한 착장에 고민이 깊어졌다. 당시에는 화농성 여드름도 하나씩 올라올 때라, 얼굴은 또 왜 그렇게 도움이 안 되는지. 거울을 보기만 해도 자존감이 저절로 떨어지곤 했다. 연못에 무심히 던진 돌로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무심히 툭 던진 말에 온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관심'이란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지적이 무례하게 던져지는지. 등교와 출근 준비 시간이 그래서 더 늘어났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나의 경우, 스스로의 외모를 저평가하며 자란 밑바탕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릴 적, 짓궂은 녀석의 장난으로 앞니가 부러졌고, 염증이 생기면서 앞니가 없는 상태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웃을 때도 앞니가 없는 게 티가 날까 윗입술을 꾸욱 누르는 게 버릇이었고, 이가 보일까 손으로 입을 가리는 건 일상이었다. 친구들의 놀림은 은 수시로 이어졌다.
'이빨이 없어. 하하하. 진짜 못 생겼다. 하하하'
처음에는 그나마 이빨이 없는 것으로 놀렸지만, 나중에는 얼굴 전체가 못 생겼다는 놀림으로 진화했다. 결국 놀림을 소화하지 못해 체해버린 후유증으로 나는 스스로를, '못났다.' 결론지었다. 못났다의 폭이 상당히 넓어, 외모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못났던 시절이었다. 자존감이란 단어 자체가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었다. 외적으로 생긴 생채기가 내적 치명타를 만들어 가는 중이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지면서 누구의 말도 곱게 들리는 것이 없었다. '손이 너무 예쁘다.'라고 하면, 얼굴이 못 생겼으니, 손이라도 칭찬해 주는구나 생각했다. '글 잘 쓰는구나.'라고 하면, 덮어놓고 비꼰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고, 아둔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내적으로 흐리멍덩해지고 있음을 무시한 채, 외적으로만 꾸미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생각지도 않고, 옆에서 누군가 했다 하면 무조건 따라 하기 바빴다. 남의 기준과 남의 눈에 따라 삶을 채워가고, 화려한 것에 현혹되어 생각 자체를 멈춰버렸던 것이다.
때문에 처음 나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리둥절했고,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궁금했다. '나'라는 기준 자체가 어떤 것인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들어, 덧붙이지 마.'
자존감이 한창 바닥이던 시절, '나'를 잃은 나에게 언니가 해주었던 말이었다. 무슨 말도 꼬아 듣는 통에 답답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몇 번 들었던 말이었지만 내내 들어오지 않던 말이었다. 그때는 왜 갑자기 귀에 멈췄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버릇은 나에게 없었다. 매번 그때의 상황과 마음을 섞어서 해석하고, 부정적 감각도 예민하게 한 스푼 담았다. 1이 귀로 들어오면 4와 5가 되어서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나마 긍정적 꼬리표를 달고 재해석되면 다행이었다.
'누가 칭찬하면, 일단 무조건 감사해요.라고 말해.'
당황하는 동생에게 언니가 내려줬던 첫 솔루션이었다. 칭찬을 해석하기 전에, 입에서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고 보라는. 그게 무슨 효과일까 싶었다.
'오늘 머리스타일 너무 예쁘다.'
'음. 감사해요.'
재해석이 들어가려던 찰나, '감사해요.'를 입 밖으로 내뱉어 보았다. 신기하게도 재해석 대신, 칭찬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이었다. 남의 이야기가 이토록 편안하게 소화되기는. 몇 번의 연습 후에 나는 사람들의 칭찬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게 어렵지 할 수 있었다.
칭찬을 칭찬으로 듣는 것도, 아닌 것도 있었다. 어김없이 재해석에 들어가 부정적 소견으로 출력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솔루션은 계속했다. 그때가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시간이나 생각들이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옆에서 아무리 바람을 넣어도 내 기준이 흔들리지 않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나고 있었다.
'주름이 많아졌다. 관리 좀 하지.'
여전히 투박하게 던져지는 말들은 주변에 많다. 생채기가 안 생긴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남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해도 거짓말이다. 어느 때는 여전히 예민한 감각이 살아나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채워진 자존감 덕분인지 예전만큼 아프진 않다.
그리고 오늘처럼, 내 기준에 딱 맞는 외출을 하는 날이면 생채기 따위에 여유롭게 대처할 여력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