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2.

커피와의 밀당

by 모니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담임선생님은 어김없이 하얀 머그잔을 꺼냈다. 선생님의 식후 커피 타임이었던 것이다. 전기포트에서 끓여진 물이 잔에 담긴 믹스커피와 만나는 순간, 달큰한 향이 교실을 가득 채웠는데. 마시지 않아도 달달함이 목구멍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아마, 그때 처음 커피 맛이 궁금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어린이들에게 커피는 금지 음료였고, 마시면 정말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소심한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해도 티를 내지 못했었다.


후에 커피와 조우하게 된 건, 고등학교 시험기간이었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썰들에 기대어, 엄마의 허락을 받아 믹스커피를 탔다. 카페인이란 단어조차 낯설던 때였고, 잠만 쫓아주면 다른 건 괜찮다 생각했다. 그렇게 한들 시험을 엄청 잘 보는 것도 아니었다는 건, 팩트다. ㅎ. 다시, 커피로 돌아가보면. 종종 맡아오던 달큰한 향은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물과 만나며 반짝이는 캐러멜 색으로 변하는 것이 나의 기대감을 슝슝 올리고 있었다. 향도 만족, 색도 만족되었으니, 이제 맛만 있으면 되리라.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홀짝 했는데!!


윽.


예상과는 너무 다른 맛이었다. 달큰한 맛이라곤 1도 없는 쓴맛. 그동안 어른들은 이게 뭐라고 그렇게 찾고, 즐겼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또한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썰에 대해서도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날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음에도 나는 새벽 1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으니까.


커피와의 밀당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좋았던 첫인상과 달리 맛은 내 취향이 아니었고, 피해 다니고 피해 다녀도 어느 때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마셔야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를 들면, 선배가 기분 좋게 서비스로 내놓는 믹스커피라던지, 봉사활동을 한 후에 고마운 마음이 믹스커피로 돌아온다던지 같은. 그럴 때면 쓴맛을 잠시 견디자 생각하며 후루룩 커피를 삼켰더랬다.


아메리카노가 나온 게 아마도 그즈음이 아닐까 싶다. 성인이 되어 직장인이란 신분으로 몇 년을 지냈을 즈음. 믹스커피도 어려운 나에게 순수 커피만을 타놓은 아메리카노는 넘사벽이었다. 물론 인스턴트 블랙커피보다는 연했지만, 쓰디쓴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다. 직장 동료 대부분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카페인 충전을 할 때, 나는 과일주스나 초코 음료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핫 초코.'


핫초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눈빛 때문에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을 순 없으니 말이다. 시종일관 카페만 가면 커피를 피하는 나에게 누군가는 캐러멜 마끼아또를 추천했고, 누군가는 카페라테를 권했다. 다 큰 성인이 핫초코를 마시는 게 꽤나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남의 시선, 남의 생각을 지금처럼 가벼이 넘기지 못했던 성격 탓에 마끼아또도 라테도 마셔보았다. 믹스커피와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문제는 양이었다. 종이컵이라 후루륵이 가능했던 믹스커피와 달리, 마끼아또도 라테도 후루룩 마시기엔 양이 많았다. 때문에 절반 넘게 남아있는 커피를 버리는 날이 많았다.


2025년 지금. 커피가 언제부터 좋아졌고, 이제는 커피 맛이 어떻게 느껴지느냐 묻는다면 여전히 물음표다. 커피는 나에게 여전히 쓴 음료니까. 그럼에도 외출할 때면 습관처럼 드라이브 스루를 찾아,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먹기 싫어 후루룩 넘기는 수준은 지나갔고, 커피를 음미하며 먹고 있다기엔 부족하다. 고소하거나 산미 있는 커피는 느낄 수 있지만, 끝으로 올라온다는 단맛은 여전히 모르겠다. 딱 요 정도 수준으로 바리스타 학원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본인이 내린 거니까, 직접 드셔보세요.'


... 굳이?! 아메리카노도 쓴 마당에 에스프레소를 맛 보라는 이야기는 정말... 목구멍까지 괜찮다는 말이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배우러 왔는데,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으니까. 보기만 해도 쓴맛이 뭉쳐있는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넘겼다.


'맛이 어떠세요?'

'시고, 써요.'

'이 커피에 쓴 맛은 없는데요.'


말이 안 된다 생각했다. 목구멍을 딱 치던 쓴맛이 어떻게 없단 말인가. 아메리카노보다 더 농축된 쓴맛이 분명 느껴지는데 말이다. 갸우뚱했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쓴맛이 없는 거라 설명했다. 설명에 다시 에스프레소를 홀짝였다. 어!? 선생님 말로 인해 나의 머리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이번에는 좀 전보다 쓴 맛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홀짝.


내 선입견이 커피는 쓰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비워내면서 커피의 쓴맛은 꽤나 중화되었다. 약이 입 천정에 붙었을 때 느껴지던 쓴맛이, 잘 삶아진 호박잎 쌈 정도의 쌉싸래함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면 될까. 배운 걸 풀어놓자면, 하급의 원두를 사용하거나, 믹스커피에 사용되는 로부스타 원두의 경우 쓴맛이 나는 게 맞다. 그러나 일반적인 카페의 아메리카노 원두는 쓴맛을 거의 내지 않는단다. 맛을 보고, 배우고 나니 그동안 덮어놓고 쓰다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날 수업 이후로 커피가 쓰다는 생각은 많이 없어졌다. 뛰어난 미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커피를 마신 경험이 짧기 때문에. 여전히 쓴맛의 여운이 남아있다. 다만, 쓰게 느껴지는 뒤로 올라오는 산미와 고소함에 좀 더 집중하며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다. 배우며 선입견도 사라지고, 생각이 바뀌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번 바리스타 자격증 도전은 참 잘한 일이다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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