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잡담

얼평 거부권

by 모니카

"우리 조카, 얼굴에 골격이 생겼네."


카페에 앉은 채 커피를 마시는데, 유독 그 말이 크고도 정확하게 귀에 꽂혔다. 남의 이야기를 굳이 엿들을 생각은 없지만, 뻥 뚫린 공간에서 음량조절 없이 쏟아진 말을 막아낼 재간도 없었다.


"얼굴에 골격이 생겼어."


다시 한번 이어지는 말에 내 고개가 절로 소리 시작점으로 돌아갔다. 솔직히 얼굴에 골격이 생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고개가 돌아가는 동안 이어진 상상으로는 광대와 턱뼈의 존재감이 상당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얼굴에, 굳이 '골격'이라는 단어가 필요할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상상이나 예상은 고운 선을 가진 얼굴과 마주하며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빨대를 입고 물고 있는 어리디 어린 학생은, 이제 갓 중학생은 되었을까. 뽀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 어디에도 뼈의 형태가 드러나는 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턱선과 콧날의 부드러운 모양새가 아주 곱게 느껴질 정도였다. 투박하게 던져진 골격이란 단어가 제자리를 잃어버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학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음료수만 마실 뿐 별 반응이 없었다. 다만, 상대방 여성의 트레이닝 무릎 부분을 잠시 잡았다 놓는 행동만 보였다. 그제야 말을 뱉은 여성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어지럽게 묶어놓은 머리카락과 앉아있어도 무릎이 나온 게 보이는 트레이닝 바지, 그 밑으로 이어지는 관리 안 된 슬리퍼까지. 오히려 골격이란 단어가 그쪽에 어울려 보였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꽤 많은 지적질과 조언을 들었던 것 같다. 외모를 시작으로, 행동, 생각, 심지어는 진로를 결정함에도 수많은 참견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참견들은 지금도 여전히 ing다. 어제도 들었으니 말이다.


"어머, 춥니? 봄인데, 무슨 옷을 그렇게 두꺼운 걸 입었어?"


봄이어도 나는 춥다. 등짝으로 스미는 찬 기운을 봄이라는 이유로 버티기보다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따뜻하게 입는 걸 택한 게 그토록 이상한 일일까?


"배가 왜 이렇게 나왔어? 살쪘니?"


겨우내 아이들과 방구석을 지키다 보니 살이 쪘다. 나도 안다. 그래서 아이들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운동을 시작하고 지금껏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몸무게도 덜어냈다.


"너도 이제 나이 드니까, 엉덩이가 처지는구나."


두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 할 말은 아닌 듯하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와중에 체형 변화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는 걸, 그녀들도 당연히 알 터인데. 왜 굳이 그런 지적을! 것도 사람 많은 곳에서! 크게! 콕 짚어서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내가 걱정되어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봄스럽게 입었을 때 칭찬을 해주고, 뱃살이 빠진 것도 같이 기분 좋아야 할 터인데, 안타깝게도 후속조치에는 박하다. 걱정이란 말로 포장된 지적질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경우, 습관처럼 지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 보이는 것에 잠시 반응할 뿐 상대방 마음에 관심이 없다. 방향만 달리할 뿐, 1년 365일 지적을 하라고 하면 할 것 같은 능력자들이다. 오늘은 얼굴평가, 내일은 옷 평가, 그다음 날은 몸 평가. 이런 식으로 마치 스케줄이 짜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남의 단점만을 골라 볼 수 있는 것도 사람의 능력이라면, 그들은 분명 능력자다.


무방비 상태로 들어온 지적에 때로는 머리가 얼얼한 경우도 있다. 뒤돌아서 그때, 왜 제대로 받아치지 못했을까 후회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세월과 함께 쌓인 경험 덕에, 이제는 귀에 들어오자마자 빠져나가는 경우가 다수다. 물론 게 중에 신경 쓰이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렇다고 내 삶의 에너지를 그곳에 낭비하고픈 마음은 없다. 그래서 나름의 방법으로, 그들이 내가 부러워서 하는 질투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질투를 받는다는 건, 어쨌건 그들보다 내가 나은 사람이라는 증거니까.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여학생을 다시 떠올렸다. 상대 지적에 아주 부드럽고 조용하게 대응하는 세련된 제스처를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얼평 거부권이나 외모평가 거부권, 진심 없이 지적질만 해대는 사람의 말듣기 거부권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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