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들어 알고 있는 것과 현실은 늘 괴리가 있기 마련이라지만 그리 당혹스러울 줄이야. 당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다. 꽤나 곤혹스럽고 꽤나 불쾌하다. 나오는 한숨도 꿀꺽 삼켜가며, 그동안의 행적을 수백 번 고민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우리 아이가 부족한 건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정말 문제적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아이 공부는 부모 된 입장으로 많은 생각을,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놓고 있자니, 무관심한 부모가 되는 것 같고. 신경을 쓰자니, 아이를 너무 옥죄는 기분이다. 어떤 이는 어릴 때는 놀아도 된다 하고, 어떤 이는 어릴 때부터 공부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이 맞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놀게 해주는 것도 좋아 보이고, 어릴 때부터 공부 습관을 길러주는 것도 좋아 보인다. 중심 잃은 엄마는 결국 아빠한테 SOS를 했다.
"우리도 어릴 때부터 공부 습관을 길러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놀게 해 주면 좋을까?"
"이제 겨우 몇 살이나 됐다고. 공부 타령이야."
아빠 한마디에 힘을 얻어, 학교 출석은 철저히 하되 학원은 우선으로 두지 않기로 했다. 저학년이라 아직은 괜찮다 생각했다. 집안에 일이 있거나, 아프거나, 쉬고 싶다고 하면 학원은 언제든 쉴 수 있게. 물론 학원 결석은 전체 출석일의 30%가 넘지 않는 선으로 아이들과 약속했다. 나의 이런 결정에 핀잔을 주는 이도 있었다. 비싼 학원비를 내면서 제대로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였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허비되는 학원비는 분명히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 생각과 다른 말들에 휘둘려 모든 상황을 다시 정리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적당히 중심을 잡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학교도 쉬고, 학원도 쉬었다. 모든 교육이 온라인으로 채워지고 있었지만, 정작 온라인 수업은 생각보다 흥미롭지 않았다. 오감을 통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없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한참 이런저런 배움이 더해져야 할 시기였지만, 채워졌던 배움조차 점점 희미해져 가는 상황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멈췄는데, 세월은 흘렀고. 공부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채 아이들은 고학년을 맞이했다. 결국 부랴부랴 학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렇게 첫 레벨테스트와 마주한 순간, 적당히 중심을 잡았던 내 생각은 심하게 흔들렸다.
"어머니, 아무래도 저희 학원으로 다니기는 힘들 것 같아요."
"네?"
"학원이다 보니, 저희가 정해놓은 진도가 있거든요. 저희 진도보다 너무 늦은 상태여서요. 죄송합니다."
코로나를 핑계로 너무 여유로웠던 탓이었을까. 모두가 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판단은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어설픈 엄마 때문에 아이 학업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그날 밤잠을 자지 못했다. 동시에 씁쓸한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학원이란 본래, 학교 수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가는 곳인데 진도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걸까 싶었다. 진도가 맞지 않는다면, 진도가 맞을 수 있게 학원에서 가르치며 끌어가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부를 어디까지 했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시험에, '레벨'이란 단어를 붙인 이유는 뭘까.
씁쓸함을 잊지 못하던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서 레벨테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현재 시점 최고의 일타강사라는 그들이 해주는 레벨테스트의 민낯이라고 해야 할까. 얘기인즉슨, 학원 레벨테스트는 아이를 0점으로 만들 수도 있고, 100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점수가 안 나올수록 부모님도, 학생도 조바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씁쓸했던 마음은 가라앉았고, 실체를 알고 나니 상담시간이 그리 당혹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이는 다른 학원의 레벨테스트를 마친 후, 현재 잘 다니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 같은 교육 과정을 거치는 아이들인데, 굳이 학원까지 전쟁처럼 가야 하나 싶은 생각은 글을 쓰는 내내 없어지질 않는다. 더 전쟁 같은 사회생활에 앞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또 하나. 나 같은 쫄보 엄마를 위해 좀 더 순화된 과정을 만들 순 없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