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를 정리하고 두 번째 도시 테살로니키로 떠난다. 짐 정리 후 열쇠를 원래 있었던 함에 넣어두고 천천히 걸어서 신타그마 광장의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티켓을 구입하고 버스에 타서 다음 여정을 생각해 보았다.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두 번째 도시이다. 에게해를 마주하는 이 도시는 튀르키예와 가까워서 버스로 튀르키예로 오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좌석이 스탠바이 상태. 오버부킹 탓이라나. 그래서 좌석이 날 때까지 대기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그리스 아주머니도 그런 상황이었고 둘 다 함께 좌석을 기다렸다. 다행히 좌석이 났고 테살로니키로 떠나게 되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테살로니키 마케도니아 공항에 도착했다.
트랩에서 내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표를 구입했다. 원래 2유로였는데 그 위에 줄이 그어지고 1.8유로로 판매되고 있었다.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삼십여 분쯤 갔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역이 있어서 보니 아리스토텔레스 광장과 면한 쪽이다. 숙소가 아리스토텔레스 광장과도 그리 멀지 않아서 나도 이곳에서 내렸다. 구글맵에서 콜롬보우역에서 내리라고 했지만, 나중에 다시 공항행 버스를 타기 위해 콜롬보우역으로 가보니 그리 차이 나지는 않았다. 숙소 부근은 레스토랑 테라스석이 점유하고 있어서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호스트가 알아보고서 인사하더니 숙소로 안내했다. 여기서는 4층, 우리 식으로 5층에 위치한 숙소는 넓고 쾌적한 원룸 아파트였다.
짐을 풀어놓고 나니 이제 배가 고프다. 주변을 검색해서 찾아간 식당 The Rouga에서 오징어 튀김과 홍합찜을 시켰다. 해산물이니 화이트 와인 한잔까지.
아테네와는 다르게 테살로니키는 구획정리가 잘 된 도시였다. 해안선을 따라 화이트 타워까지 걸어보았다. 해가 아직 남아있긴 했어도 저녁 7시에 가까워졌고 숙소까지 돌아오는 것도 생각해서 거기까지만.
다음날은 메테오라 투어가 있는 날이다. 아침 8시까지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동상이 있는 광장으로 가야 했다.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동아시아인은 나밖에 없었다. 아테네보다는 메테오라에 좀 더 가까워서 이번 투어는 테살로니키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신청했다. 메테오라로 가는 길에 높이 솟은 산이 하나 떡하니 나타난다. 오늘은 산꼭대기까지 잘 보이는 저 산이 바로 올림푸스. 가이드 말로는 그리스 사람들도 우스갯소리로 올림푸스에 구름이 끼지 않으면 오늘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지 않는가 보다라고 한단다. 어쨌든 신화 속의 산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휴게소에서 산 프레도 에스프레소와 올림푸스산을 담아보았다.
휴게소를 떠난 버스가 계속 달려 칼람바카 쪽으로 들어가니 메테오라 지역 특유의 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스어로 Meteora는 '공중에 떠 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자가격리한 이 수도원에서 수사들의 삶은 진정한 구도자의 모습이었을 것이고, 물리적으로도 신에게 가까운 삶이었지 않을까.
테살로니키에서 출발한 당일투어라 우리가 입장한 곳은 도로에서 바로 수도원 입구로 들어갈 수 있는 성 스테파노 수도원, 그 주변의 기암절벽을 볼 수 있는 뷰 포인트, 그리고 루사노 누네리 수도원이었다. 일정이 더 길고 칼람바카에 머물렀다면 아마 좀 더 극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넘겨두자. 언젠가 다시 올 때를 기대하며.
투어의 마지막은 점심 식사. 멋진 풍경을 뒤에 두고 유쾌한 웨이트리스가 서비스하는 식당에서 치킨 수블라키와 맥주 한잔. 오늘 하루도 알차고 즐겁게 흘러간다.
다시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테살로니키로 귀환. 늦은 오후, 아니 거의 저녁이지만 여전히 햇살은 남아있고 많은 이들이 느긋하게 보내는 금요일 저녁이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투어를 다녀오는 일들은 피곤한 일이다. 동네 식료품점에서 먹거리를 샀는데, 이 가게의 지하층에 진열된 것들이 흥미로웠다. 한순간 한인마트 온 줄 알았다는. 단무지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다음날 하루는 온전히 테살로니키 자유 여행. 그런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가이드북을 펼치고 숙소에서 가까운 곳부터 천천히 가보기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의 커다란 꽃시계를 보고, 길거리에서 파는 쿨루리 하나를 사서 조금씩 뜯어먹으며 하기아 소피아로 향했다.
테살로니키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하기아 소피아는 중세 비잔틴 양식의 교회이다. 내부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16세기 오스만 투르크 통치 시절에 모스크로 사용되었던 이 교회는 1917년 대화재 이후 재건축을 통해 교회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이 교회는 8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발굴 작업을 통해 그 이전에 세워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그리스 정교회 성당 내부를 볼 일이 많은데, 로마 가톨릭 교회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독특한 비잔틴 이콘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인드 글라스나 멋진 예술적 작품들보다는, 마치 우리나라 사찰의 단청무늬나 탱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다음 목적지는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 여행 가이드북에는 고고학 박물관, 화이트 타워, 비잔틴 문화박물관 통합이용권이 있다고 했는데 박물관에 가니 그게 없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변경되었다고 한다. 고고학 박물관은 화이트 타워 뒤편에 있다.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은 테살로니키와 그리스 북부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 한다. 이 지역은 고대 마케도니아에 해당하기에 그와 관련된 유적을 볼 수 있다. 황금유물이 유명한데, 이 유물들을 보고 있자니 신라 시대 유물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황금 유물들과 함께 있었던 작은 유리병들 때문인지도.
박물관을 다니고 나면 배가 고프다. 주변의 음식점을 검색하여 찾아낸 레스토랑 겸 바인 이곳에서는 브런치를 판매하고 있었다. 달걀 요리라 이름 붙은 이 브런치는 다름 아닌 에그베네딕트. 프레도 에스프레소와 함께 한 맛있는 브런치였다.
화이트 타워 뒤편의 메갈루 알렉산드루 거리에는 말을 탄 용맹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을 볼 수 있고 그 너머로 우산 조형물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 조각가 조지 종골로파울로스(George Zongolopoulos)가 1997년에 테살로니키가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설치한 것이라 한다.
해질 무렵에 나오면 좋겠지만 숙소와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어서 미처 나오지는 못했다.
비잔틴 문화 박물관은 그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비잔틴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아서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이었다.
외국에선 스타벅스에 잘 가지 않지만, 오늘은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생각났다. 박물관을 나와 스타벅스를 향해서 메갈루 알렉산드루 거리가 보이는 길을 지나는데 아까 보았던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 이곳에서 보니 더 멋있었다.
이미 화이트타워 입장 시간은 훨씬 지나버려서 로툰다 쪽으로 향했다. 로툰다 가기 전에 갈레리우스 개선문을 보게 된다. 4세기 초반,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 개선문은 카마라(Kamara)라고도 불린다. 허물어져가는 고대 기념물이지만 도시의 고풍스러움을 더해준다.
개선문에서 위로 올라가면 원형의 건물이 나타난다. 로툰다라는 이름은 원형홀이 있는 둥근 지붕의 건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의 다른 도시에서도 로툰다, 혹은 로톤다라는 명칭을 들은 적이 있었다. 로툰다는 로마 시절에는 신전으로, 오스만 투르크 통치 시절에는 모스크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로툰다 정면으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로만 아고라가 나온다. 여기까지 걸으니 조금 피곤하다.
저 위쪽에 보이는 교회까지 가보고 싶었으나, 어제부터 찾아오기 시작한 여름 감기의 몸살증상이 조금씩 나타난다(사실 그 교회에 가지 않았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 교회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면서 아름다운 비잔틴 예술품을 볼 수 있는 성 드미트리우스 교회였기 때문이다). 혹은 냉방병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컨디션이 좋지는 않다. 다음날 체크 아웃이 11시라서 오후 네시 반 비행기 탈 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았다. 오후 두 시 정도까지 짐보관이 가능한지 호스트에게 물었더니, 오후 2시에 체크아웃하라 하신다. 그래서 숙소에서 더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컨디션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상태였어서, 오전 시간을 이렇게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오전 시간을 그리 쉬었는데 감기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다. 종합 감기약도 다 먹어가니 크레타에 가면 그리스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구입해야겠다.
오후 한 시 반,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완전히 나쁘지는 않다. 크레타 한냐(하니아로 불리기도 하지만 저렇게 읽히는 것이 그리스어에 가깝다고 한다)로 가는 직항비행기는 너무 일찍이거나 너무 늦게라서, 아테네를 경유하는 비행기 편을 구매했었다. 그런데 아테네 공항에서 한냐가는 비행기가 한 시간 지연되었다. 크레타에서는 렌터카로 돌아다니게 되는데 한 시간 늦어지다니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해가 긴 편이니까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기. 이제, 그리스 섬 여행을 시작해 본다. 동시에 해외에서의 첫 렌터카 여행. 두근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