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약간 흐린가 싶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것은 오산이었다. 아테네의 여름은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더니 정말로 쨍하게 개인 날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아크로폴리스 통합권을 개시해 보는 걸로.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오후 6시 예약이라 우선은 다른 곳들을 돌기로 했다.
제일 처음으로 시작한 곳은 제우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국립 정원 근처의 이 유적은 복원으로 비계가 보강되어 있어서 조금 안타깝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아크로폴리스의 모습이 극적으로 아름답다.
제우스 신전에서 다목적 전시공간으로 사용되는 자피온 쪽으로 향하다 보면 고대 로마의 목욕탕 유적을 지난다. 관광객 입장에서야 볼거리 많은 곳이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살아갈까.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유적이 가득한 곳에 살 수나 있을까.
자피온은 그저 외부에서 사진 찍는 것 이외에는 그다지 끌리는 것은 없다. 근대 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에반게리온 자파스와 콘스탄티노스 자파스 형제의 이름을 따서 지은 다목적 전시공간인 이곳은 국제회의와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라 한다.
자피온을 나와아크로폴리스 쪽으로 향한다. 숙소로 갈 때는 그런가 보다 했던 리시크리테스 기념비. 디오니소스 경연대회 후원자였던 그가 우승상품인 청동 트로피를 세워놓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6개의 기둥에 디오니소스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고온건조한 아테네의 날씨는 생과일주스를 부른다. 수박과 망고, 기타 과일이 섞인 주스 한잔을 하고 아크로폴리스 쪽으로 올라간다.
구글 검색은 따라가다 보니 아크로폴리스 주변을 크게 돌아버렸다. 본의 아니게 아테네의 전경을 찍게 되었고, 저녁에 오를 예정이었던 아레오파고스 언덕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는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보면서도 아래쪽 고대 아고라와 로만 아고라 유적을 볼 수 있다. 해질 무렵에 올라오면 정말 멋있을 곳이다.단,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돌이 미끄러우니 항상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아크로폴리스를 한 바퀴 돌아 내려왔더니 배가 고프다. 구글 평점에 근거하여 찾아간 레스토랑 Lofty에서 베리그라니따와 치킨 수블라키를 시켰다. 차가운 얼음물이 무료로 계속 제공되는 이곳의 음식은 맛있었다. 결국 맥주의 유혹에 넘어가 생맥주도 한잔. 치맥은 사랑이다. 식사 후 후식으로 나온 체리 설탕 절임도 맛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간 곳은 신 아크로폴리스박물관. 영국 박물관의 엘긴 대리석의 반환을 요구하며 지은 이 박물관에서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보는 것은 정말 압권이다. 그렇게 많은 문화재가 약탈 또는 반출되고서도 자국 문화재로만 박물관을 채우고도 남는 두 나라 중 하나 그리스(나머지 하나는 이집트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와 기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리스인들의 염원이 담긴 듯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나오고 나서도 아크로폴리스 입장 시간인 오후 6시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통합권으로 가볼 수 있는 곳에 입장해 보는 걸로.
로만 아고라 쪽으로 향한다. 원래 그리스의 아고라도 있었지만 로마에 의해 정복당한 후 고대 아고라 외에 새로운 아고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모양이다.
로만 아고라 옆으로 모나스티라키 광장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북적이며 다니는 이곳은 벼룩시장이 열리기도 해서 각별히 소지품을 조심해야 한다고.
벼룩시장 끝을 돌아가면 고대 아고라 유적이 나온다. 마치 시칠리아의 아그리젠토 유적을 보는 느낌이다. 독특한 것은 고대 아고라 입구 밑으로 지하철이 지나간다.
이제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간다. 아직 뜨거운 햇살 아래였만, 그래도 마지막 입장보다는 나을 테니. 세계인의 관광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에 대한 세계인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우연히 한국분이랑 함께 올라가게 되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복원을 위한 비계가 세워져 있지만 그 자체로 멋진 작품이다. 어느 누가 저 신전을 보고 감탄하지 않겠는가. 반출된 엘긴의 대리석은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내려다보이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에선 오페라 리허설이 한창이다. 익숙한 선율이 있어 혹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아닐까 했는데 맞췄다. 내가 막귀는 아닌가 보다. 아테네를 내려다보고 저 먼바다까지 품은 아크로폴리스는 멋짐 그 자체였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에 아크로폴리스만 한번 더 올라갈까 싶다.
오늘의 동행과 가볍게 맥주 한잔 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그녀는 내일 귀국하고 나는 내일 두 번째 도시 테살로니키로 떠난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좌충우돌 아테네 여행은 즐겁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