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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산토리니 2

까탈스러운 이에게는 세상 편한 혼자 여행

by 낮은 속삭임

숙소의 내 방이 동향이라는 것을 아침이 되어서야 느꼈다. 작은 발코니 문틈으로 햇살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여행한 본토와 크레타, 산토리니까지 그리스에서의 날씨는 모두 맑음. 다음에 여행할 낙소스, 미코노스 역시도 같은 날씨로 여름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고온건조한 날씨 탓에, 지중해는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게 가장 좋은 휴양지라고 한다. 산토리니도 그런 휴양지여서 그런지 느긋하게 쉬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나는 오늘 산토리니 반나절 투어를 신청했고, 픽업은 숙소 앞에서 이루어졌다. 운전기사에게 그리스어로 '칼리메라~'하고 인사하니 대뜸 그리스어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인사말과 '고맙습니다' 정도만 알고 있다고 영어로 답했다. 마치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안녕하세요'하면 한국인들이 똑같이 '한국어 할 줄 아세요?' 하는 것처럼 질문을 해왔기에. 운전기사는 각 픽업 장소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가이드를 태워서 오늘 투어를 시작한다. 가이드와 함께 시작한 투어는, 산토리니 섬의 중앙에 있고 내 숙소가 있는 피라 마을의 아래쪽에 있는 산에서 시작하여 피라마을과 그 조금 위쪽에 있는 피로스테파니, 그리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위쪽의 이아 마을로 진행된다. 피라 마을 아래쪽의 산에서 동쪽을 내려다보면 산토리니 공항인 티라 공항이 보인다. 본섬 자체가 그리 큰 섬은 아니기에 공항도 자그마하다. 그러나 저 공항으로 쉴 새 없이 비행기가 이착륙하고 있었다. 티라 공항은 내가 이 섬에 도착한 신항구의 반대편에 있다.

초승달 모양의 티라 섬은 원래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원래는 동그란 일반적인 섬이었으나, 화산폭발 이후 칼데라가 형성되었고 그 안에 바닷물이 들어찬 지형이라고 한다.

섬의 남쪽에 있는 작은 그리스 정교회 성당에 들어섰다. 그리스 정교회 성당은 로마 가톨릭 성당과는 조금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내부의 제단화들은 틀에 박힌 비잔틴 양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전에도 말했듯이, 마치 우리나라 사찰의 탱화나 단청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산토리니는 건조한 화산섬으로 포도주가 유명하다. 뜨거운 햇빛과 거센 바닷바람으로 인해 산토리니의 포도는 독특하게도 동그란 바구니 모양을 이루어 재배된다. 쿨루라(kouloura)라고 불리는 이 독특한 모양으로 포도알이 포도 잎으로 덮이게 되고 그래서 강렬한 햇살이 과일에 닿지 않아 포도가 촉촉하게 영글어가게 된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잠시 이동하여 찾아간 곳은 옛날식 가옥의 형태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집을 보기 위해 가는 길에는 종이 다섯 개 달린 아치형 문을 지난다. 파란 하늘과 하얀 종탑이 예쁘게 빛났다.

화산석으로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기에 집은 튼튼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살지 않는 집은 그대로 낡아가고 있었다.

잠시 카페에서 쉬는 시간. 튀르키예 커피와 유사한 그리스식 커피나 일반 커피는 투어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리스식 커피를 한잔 마시려는데 메뉴에 산토리니 맥주인 옐로 동키가 있어서 커피와 맥주를 함께 시켰다.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투어에 참여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중 이탈리아에서 온 여자분과 내가 혼자 여행자라 그녀와 나는 우연히 오늘의 동행이 되어 즐겁게 투어에 참여했다. 카페 외부 정원은 아름답게, 내부는 마치 작은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카페에서 쉬었다가 피라 위쪽의 작은 마을 피로스테파니로 왔다. 광고에서나 볼 듯 한, 피라의 세 개의 종이 있는 교회와 그 푸른 돔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피로스테파니를 잠시 산책하고 나서 이아 마을로 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하는 이아 마을은 정말 아름답다. 이곳에서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자유 시간이 주어져서 골목골목을 헤매며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찍어본다. 어디를 찍어도 광고나 풍경 사진에 나올 법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파란 하늘 아래 핫핑크색 부겐벨리아 꽃이 싱그러운 여름을 환하게 빛내고 있었다.

이아 마을 산책을 끝으로 투어가 끝났다. 피라 마을 중심지에서 투어팀과 헤어지고 다시 피라 마을 산책.

피라 마을의 아래쪽에서부터 피로스테파니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숙소가 피로스테파니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작은 골목들의 재미가 쏠쏠하다. 비잔틴 양식의 벽화가 내부를 채우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은 언제 봐도 새로운 느낌이다.

그리스에 그리스 정교회 성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라 마을의 중심부에는 로마 가톨릭 성당인 세례 요한 주교좌성당도 있다. 이 교회의 외부는 산토리니의 여타 건물들과는 색채가 조금 다르다. 그래서 좀 더 돋보이는 느낌이다.

이아 마을 아틀란티스 서점에는 들르지 못했고 대신 피라 마을의 아틀란티스 서점에 들렀다. 두 서점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구글맵에 나타난 피라 마을의 아틀란티스 서점도 나름대로 예뻤다.

서점을 나와 다시 피라 마을 산책. 왔던 길을 계속 지나쳐가고 봤던 풍경을 또 보면서 지나가지만 볼 때마다 그 풍경이 새로워서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게 된다. 이제 내일이면 산토리니를 작별해야 하니 아쉬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덧 햇살이 부드러워진다. 해질 무렵이 다가오는 것일까. 아틀란티스 서점 쪽으로 되짚어 걸어간다. 해는 천천히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지고 있고 보았던 장소도 같은 곳인데 해지는 느낌은 또 어제와 다르다.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저녁이 되니 출출하다. 가벼운 간식과 음료로 대충 먹어서 그런 것일지도. 구글맵을 펼치니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Salt & Pepper라는 이 식당은, 첫날 식사했던 No Name처럼 단순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 유쾌한 웨이트리스의 서빙이 기분 좋은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오늘 식사와 함께 한 맥주는 레드 동키. 블루 멍키, 옐로 동키에 이어 다시 산토리니 맥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미트볼로 저녁식사를 하며 옐로 동키까지 한잔 더. 오늘 하루가 다 즐거웠다.

다음날은 산토리니를 떠나는 날. 페리는 오후 시간이라, 숙소 조식을 먹고 체크 아웃을 한 뒤,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오전 시간에 피라 마을을 돌아다녔다. 구항구로 내려가는 케이블카 역을 보고 든 갑작스러운 호기심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뜯어말렸어야 했다. 내려가는 케이블카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한가로이 구항구를 바라보며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구항구에 가까워지자 걱정이 밀려들었다. 올라오는 케이블카를 대기하는 사람들의 줄이 어마어마하다. 이미 내려왔으므로 돌이킬 수는 없는 법. 구항구를 가볍게 산책하였는데, 울릉도 항구 같은 느낌이다.

구항구는 그 자체로 예뻤지만, 크루즈 관광객들이 내려서 피라 마을로 올라가는 그 대기줄을 보니 이를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라 마을로 올라가는 방법은 케이블카, 당나귀 택시, 아니면 30분 정도의 오르막 도보여행뿐이다. 케이블카는 지금 줄을 선대도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두 번째 선택지인 당나귀는, 동물이 무섭기도 하고 자신도 없어서 포기. 결국 가장 단순 무식한 방법인 도보 30분 언덕길 오르기를 선택했다. 이 길은 당나귀들이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길을 조심스레 살피며 걸어야 한다. 곳곳에 당나귀 배설물이 있기 때문이다. 나만 도보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이들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는데, 헉헉대며 올라가는 도중에 뉴질랜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얘기하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피라 마을에 도착.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역시 힘든 길에는 동행이 있어야 한다.

더운 날씨에 생각지도 않은 산행(?)을 했더니 휴식이 필요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스무디 한잔 하며 멍 때리기. 좋지 아니한가.

한참을 쉬고 나니 정신이 조금 차려진다. 산토리니를 떠나기 전에 기념품 사기에 몰두. 이곳에서 와인을 사면 가장 좋겠지만 아직 여행 일정이 꽤 남았으니 가벼우면서도 산토리니를 떠올리기에 가장 좋은 것들을 골랐다. 당연히 마그넷도 함께 샀고.

숙소로 돌아와 미리 요청한 택시를 탔다. 물론 버스를 타고 저렴하게 갈 수도 있었지만, 무거운 내 여행 가방을 들고 저 계단과 골목을 내려가기엔 너무나 지칠 듯하였기에.

도착할 때와 마찬가지로 구불구불한 길을 택시는 천천히 내려갔다. 신항구에는 나처럼 페리를 탈 많은 승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도 어느새 다음 여행지로 갈 페리를 기다리고 있다.

안녕, 산토리니. 다시 올 지는 잘 모르겠만,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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