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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산토리니 1

혼자면 어때, 산토리니인데

by 낮은 속삭임

오전 8시 배를 타기 위해 7시에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나왔다. 항구는 그리 멀지는 않지만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여행가방을 끌고 오기엔 멀다. 웹 체크인을 끝냈지만 확인 차 표를 보여주었더니 직원이 종이 티켓을 인쇄해 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그중 다수가 산토리니에서 내린다. 배 뒤쪽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타면서 각자의 여행 가방을 지정된 곳에 두고 자리를 찾아간다. 나도 그렇게 그리스에서의 첫 번째 페리를 탔다.

도떼기시장 같은 탑승을 거쳐 자리에 앉으니 어느새 배가 출발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바깥의 바닷바람과 풍경을 즐기고 있었지만, 저 햇살의 따가움과 강렬함을 알기에 나는 안에 있었다. 두 시간 정도의 페리 여행에 잠이 솔솔 쏟아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부산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산토리니에 거의 도착한 모양이었다.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물으니 곧 도착이란다. 한국인들보다 더 성질 급한 외국인들이 내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이윽고 항구에 도착한 배가 뒤쪽 문을 열자 저마다의 짐을 찾은 수많은 승객들이 서둘러 내린다.

항구에는 렌터카 직원, 택시 호객꾼, 버스 호객꾼들이 손님들을 끌기 위해 곳곳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일반버스를 타면 가장 저렴하게 갈 수 있지만, 여행가방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나는 10유로의 쉐어링 버스를 탔다. 숙소가 피라 마을에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피라 중심지에 내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산토리니는 신항구와 구항구로 나뉘는데, 구항구는 산토리니 부근 투어 크루즈들이 사용하는 편이고 내가 탄 페리와 같은 섬과 섬들이나 내륙으로 가는 교통 편들은 신항구를 사용한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버스는 피라 마을을 향해 떠났다.

이윽고 피라 중심지에 도달했다고, 버스 기사가 짐을 내려주었다. 나중에 보니 그곳은 확실히 피라 마을 중심지였다. 단지 내 숙소가 그곳에서 계단과 언덕길을 엄청나게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것이 문제였지. 피라 마을의 좁은 골목과 계단을, 무거운 여행가방을 끌고 또 때로는 들어 올리고 하며 구글맵을 보며 올랐다. 1/3쯤 왔을 때 욕 나올 뻔했다. 하지만 결국 이 무거운 짐을 들고 온 것은 나 자신이 아니던가.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짜증은 있는 대로 났지만, 어쩔 수 없다. 드디어 저 언덕배기에 내 숙소 이름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천신만고 끝에 숙소 도착. 호텔 리셉션에는 나이 지긋한 그리스인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오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내 말에, 그는 산토리니가 원래 이런 곳이라며 그냥 웃는다. 내 여행가방을 들고 그가 안내한 내방은 동쪽에 자그마한 테라스가 있는 트윈룸이었다. 올라오는 동안 너무 힘들었고 아직 햇살이 따가워서 쉬었다 나가기로 했다.

오후 늦은 시간이지만 오늘 식사를 한 적이 없어서 구글맵을 펼쳤다. 근처에 평점이 괜찮은 식당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No Name이었다. 일단은 식사를 해야 하니 그곳으로 찾아갔다. 해산물 파스타와 피타빵, 차지키 소스에 블루 멍키(Blue Monkey) 맥주. 블루 멍키와 옐로 동키(Yellow Donkey)는 산토리니 지역 맥주라고 한다. 크레타를 출발하기 전, 호텔 조식 이후 첫 식사다. 파스타는 약간 짰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일몰 전망대로 향했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 시간가량은 남은 것처럼 보였다.

짐을 끌고 올라올 때는 너무 힘들어서 몰랐지만 산토리니는 골목이 예뻤다. 비단 산토리니 골목만 예쁜 것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원래는 하나의 큰 섬이었으나 화산 폭발로 원래 섬의 대부분은 사라진, 가운데에 바닷물이 차오른 칼데라가 되었다고 한다.

서쪽 전망대는 약간 널찍한 공간으로 일몰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 전망대 아래 위쪽은 모두 프라이빗 풀이 있는 숙소이다. 그러니까 이쪽에 숙소를 잡으면 숙소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신혼여행으로 사람들이 산토리니를 그렇게 외치는 모양이다.

햇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삼십 여분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사람들은 속속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주변을 잠깐 산책했다. 하얀 벽에 파란 돔이 있는 교회는 정말 사진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다시 전망대 쪽으로 왔다.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해지는 풍경을 보러 나왔다. 어린 왕자가 왜 그리도 해지는 풍경을 좋아했는지 이해가 된다. 어쩌면 그가 사하라 사막이 아니라 이곳에 도착했다면 어땠을까.

산토리니의 반나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오늘 아침 일찍 이라클리오에서 페리를 타고 정신없이 섬에 도착하여 해지는 풍경을 보기까지의 순간들이 빠른 필름 돌아가듯이 지나갔다. 내일은 오전 시간 산토리니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너무 좁은 도로와 굽은 길, 그리고 다른 수많은 차들로 인해 렌터카를 포기했다. 렌터카로 다니면 훨씬 편하게 해변까지 돌아볼 수 있을 테지만, 이곳은 크레타보다 주의 깊은 운전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은 언제 올지 모를 다음 기회로 넘겨버리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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