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사 한국현대동화집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동화는 거의 다 비극
아마도 일제 강점기의 잔재였는지도 모른다. 힘없고 가난한 민족성이 너희들이라는 일제의 강압적 세뇌활동이었을지도. 이 동화들이 쓰여졌던 때는 해방 이전과 이후 모두 포함되었을 것일 테지만.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계몽사판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 50권이 있었다. 아마 동네를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책장수에게서 어머니가 사셨던 모양이다. 특별히 우리를 위해 샀다기보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너도 나도 사니까 어머니도 사셨던 듯. 없는 살림, 딸부잣집에 50권짜리 동화책이라니 어머니의 허영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책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 50권은 정말 책들이 다 낡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열심히 읽었었다. 그리스 신화, 트로이 전쟁을 다룬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동화로 옮겨놓은 호머 이야기, 성경 속 내용을 동화처럼 풀어놓은 성서 이야기,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러시아, 독일, 북유럽, 남유럽, 인도 동화집에 오즈의 마법사가 포함된 미국 동화집, 안데르센 동화, 그림동화, 이전에 언급했던 엘리너 파전의 창작동화집 '작은 책방'의 번역판이었던 보리와 임금님, 로빈 훗, 돌리틀 선생님 이야기, 톰 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소공녀, 소공자, 아라비안 나이트, 십오 소년 표류기, 닐스의 이상한 여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찰스 램과 메리 램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쿠오레, 피노키오, 삼국지, 서유기, 수호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에밀과 탐정, 명작 추리소설집, 전래동화집, 전래동요집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던 그 전집의 마지막 권이 한국 현대 동화집이었다. 방정환 선생이 쓴 <벚꽃 이야기>, 정휘창 선생의 <원숭이 꽃신>, 마해송 선생의 <바위나리와 아기별>, 주요섭 선생의 <진달래와 옥순이>, 이주홍 선생의 <살찐이> 등 아마도 일제 강점기 때 쓰였을 동화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전집의 다른 책들 중에서 한국현대동화집은 가장 덜 읽은 책이었다. 이유는 내용이 너무나 슬픈 것이 많았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폐병에 걸린 엄마가, 다른 애들은 모두 가지고 노는 '언네(어린애)' 인형이 없는 딸에게 아픈 몸을 이끌고 몇 날 며칠에 걸려 인형을 만들어준다. 기쁜 마음에 인형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놀려고 하지만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서 혼자 언네와 놀며 목소리가 커지는 소녀는, 인형을 만들다 무리해서 각혈을 하며 죽어가는 어머니의 작아지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주요섭 선생의 <진달래와 옥순이>에서 진달래는 산에서 꺾여 와 화병에 꽂힌 신세로 병든 옥순이 곁을 지키지만, 화병의 물이 말라가며 죽어가고 옥순이도 목마름에 '물! 물!'을 외치며 죽어가는 이야기였다. 그나마 가볍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이주홍 선생의 <살찐이>. 경상도 방언으로 '살찐이'는 고양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동화에서 살찐이는 돌아다니다가 낡은 냉장고에 갇힌다. 꼼짝없이 갇힌 냉장고에서 생쥐 한 마리를 잡는데 그 생쥐가 자신을 살려주면 살찐이를 구해주겠다고 한다. 그 냉장고가 낡았던 탓인지 생쥐는 열심히 낡은 곳을 파고 구멍을 내어 도망친다. 도망치는 생쥐에게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약속은 어쩌겠냐 하니, 자신이 뚫은 구멍으로 소리치라며 생쥐는 사라진다. 살찐이는 그 구멍으로 '야옹'하고 외치고, 이 소리를 들은 주인이 냉장고 문을 열어 살찐이를 구한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것이라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이 동화를 제외하면 가난하고 어려운 살림에 병든 부모나 아이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동화가 쓰여졌던 시기가 일제 강점기였고, 그때 우리 민족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 민족이 태생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세뇌시키기 위한 일제의 만행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민족성이 가난하고 힘없는, 그래서 평생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던 일제의 꼼수라는 해석. 아마도 그 시대의 쓸쓸하고 비극적인 얘기가 한국 현대 동화집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어서, 우리 집에서 이 책은 전집의 다른 책들보다 상대적으로 깨끗했었다. 그만큼 잘 읽지 않았었고, 또 읽고 나면 오히려 더 서글퍼졌으니까, 그래서 덜 펼치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