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구뼈를 아시나요
그 시절, 집집마다 있었던 민간 지혈제
불과 40여 년 전인데 기억을 더듬어 쓰다 보면 정말 아주 오래된, TV에서나 볼 듯한 근대 이야기처럼 보인다. 아마도 나의 고향 도시가 그리 번화하지 않은 소도시였기에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 비해 느리게 발달하였고, 내가 살던 마을이 가난한 변두리 마을이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반 세기도 덜 되는 시간 동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그런 것일지도.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축복받은 세대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날로그를 비롯한 많은 옛것의 종말을 맞이한 세대이기도 하다.
의료보험이 없었던 그 시절에 병원에 간다는 것은, 집에서는 도저히 손쓸 수 없을 때였다. 손이 베였거나 가벼운 생채기 따위는 상처에 딱지가 생기고 저절로 아물 때까지 내버려 뒀었다. 그러나 피가 쉽게 그치지 않을 때 사용한 것이 있기는 했다. 그것은 하얀색의 길쭉한 타원형의 뼈였다. 피가 나는 상처 부분을 살짝 닦아내고 그 타원형 뼈의 일부를 칼끝으로 긁어 그 가루를 상처에 뿌리면 신기하게 지혈이 되었다. 물론 바로 딱 멈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오자구뼈'라고 부르셨다. 나중에 알게 된 '오자구뼈'의 정체는 갑오징어 뼈였다. 오징어를 한자어를 차용하여 쓴 말이 '오적어(烏賊魚)'이니 아마도 '오자구'는 오적어가 민간에 전달되어 변형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손이 베였거나 생채기가 났을 때 신발장 한 구석 어딘가를 뒤적이면 창호지에 싸여있는 작은 갑오징어뼈 조각이 나왔다. 온전한 모양이 아니라 부서진 파편이기도 했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툇마루에서 드러난 상처의 피를 살짝 닦아내고 나서 어머니는 칼로 그 뼈를 살살 긁어서 가루를 내고 그것을 상처 위에 뿌려주곤 했다. 그 가루가 피와 엉기면서 보기 흉하게 응집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피는 멈추었고 상처에는 곧 딱지가 앉았다. 그런데 꼭 상처에 딱지가 앉으면 그것을 뜯어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는 그대로 둬야 한다고 어머니께서 신신당부를 했어도, 딱지 끝이 메말라가며 일어나면 그것을 뜯어내고 싶은 충동. 그러다가 결국 다시 상처에서 피와 진물이 나고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손톱 아래쪽에 난 거스러미처럼, 끝이 일어나는 상처딱지는 그런 충동이 일게 만들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고, 딱지를 끝내 뜯어내어 피와 진물이 나오기를 여러 번, 결국은 예쁘게 아물 수 있는 상처였지만 그다지 보기에 좋지 않은 흉터가 진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집집마다 있었던 오자구뼈가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게 되었다. 상처의 소독약으로 빨간약이라 불리는 요오드팅크가 아마 집집마다 구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요오드팅크보다 효과가 좋은 포비돈 요오드가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상처 소독용 연고들이 많아서 포비돈 요오드도 일반 가정에서 보다는 학교 같은 기관의 소독약으로 구비된 경우가 더 많다. 어쨌든 의약품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민간요법 약으로 쓰였던 오자구뼈는 잊혀져 갔고, 신발장 한켠에서 창호지에 싸여 있었던 그 자그마한 뼛조각들은 어느 순간 바스러진 채로 버려졌다. 물론 한방에서는 갑오징어 뼈를 여전히 약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일반 가정에서 굳이 그것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도 어느 한순간에는, 햇살 따뜻한 어느 봄날, 뜀박질하다 넘어진 상처에 간지럽게 떨어지던 오자구뼈의 질감이 어렴풋이 생각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