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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Nov 02. 2024

나를 위한 사치, 때 이른 카공족...?

혼자, 그리고 아이리쉬 커피

스터디 카페라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다. 그리고 스터디 카페라는 것이 생겨서 오히려 다행이다. 수년 전,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 가볍게 수다 떨며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었나. 갑자기 우리에게 좀 조용히 해달라며 집중이 안된다고 약간 짜증을 냈다. 그때는 정말 황당했다. 카페라는 곳의 목적이 친구들을 만나고 서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곳인데, 본인의 공부나 업무에 방해된다며 생판 모르는 남에게 조용해 달라니.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듯이 시끄럽게 떠든 것도 아니었는데. 그땐 스터디 카페의 개념도 없었지만, 카페라는 곳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남들에게 조용해 달라고 할 것 같으면 자신이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어야 하지 않았나. 아무튼 그때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각자의 공부나 집중 방식이 다른 탓도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카페 같은 소음이 있는 곳에서는 집중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공부한다든지 카페에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그 카페는 스터디 카페도 아니었고 개방된 곳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소음도 꽤 있었던 곳이었는데, 굳이 처음 보는 이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했던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살았던 소도시에, 다방이 아닌 카페가 생기기 시작했었던 오래전의 일이 생각났다.


지금은 혼자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장면이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데이트하는 남녀가 오래도록 눈을 맞추며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 카페였고, 우후죽순처럼 그런 카페가 한창 생겨나던 때였다. 그중 내가 가끔 갔던 곳은 2층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조금은 어둑하고 푸르스름한 조명이 오히려 편안했다. 그때 마시던 커피는 아이리쉬 커피. 지금의 아이리쉬 커피에 비하면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색다르고 매력적인 커피였다. 레몬즙을 바른 잔 테두리에 설탕이 찍혀있는, 약간의 알코올이 포함된 그 커피는 당시 내가 즐길 수 있는 사치이기도 했다. 가끔은 책을 들고 가서 읽기도 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어쩌면 나는 때 이른 카공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을 들고, 어둑한 조명 아래였지만 어느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즐기는 혼자만의 독서 시간은 편안했다. 공부나 업무라면 나는 기본적으로 아주 조용한 곳에서 집중해야 하는 편이지만, 가벼운 독서라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때부터 청승맞게 혼자 카페에 앉아있었냐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이 사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당시 카페에 있던 사람들, 특히 커플들은 나를 낯선 시선으로 보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 당시에 누군가 나를 따돌렸다거나 상처받은 마음이 있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혼자였던 것을 즐겼고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뭔가 서글픔이나 외로움이 있긴 했었겠지만, 그것을 제대로 알아채기에는 너무 어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연애 감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런 간지러운 감정들에 대해서는 무덤덤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 카페에 그렇게 혼자 앉아 자신의 시간에 침잠해 있는 내가 서글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카페에서의 나는 그 당시 현실에서의 나에서 도망쳐 나온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현실이었고, 이겨내기 힘든 시절도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었을지도 모르니. 그저 푸르스름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그리고 적당히 달콤 쌉싸름하면서 한 모금의 끝자락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아주 엷은 술맛이 있는 아이리쉬 커피를 즐겼던 그때의 내가, 아주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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