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은 속삭임 Nov 16. 2024

생일

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중요한 날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생일을 잘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 집 식구들도 몇몇은 알고 있지만, 우린 가족 간에 생일 축하한 일이 드물었다. 부모님의 생신 말고는 딱히 형제들의 생일을 챙긴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딸부잣집 막내딸 생일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그것을 챙기겠는가. 내가 어렸을 적엔 그랬다.

내 생일은 돌아가신 큰 외숙모님과 같은 날이었다. 외갓집에서는 가장 큰 어른이셨기에 외숙모님의 생일은 거의 동네잔치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일에 어머니를 따라 외숙모님 생신 잔치에 갔었다. 그날이 내 생일인 것은, 어머니 외에는 나와 같은 학년이었던 외사촌 밖에 몰랐다. 그녀는 외숙모님 생신 잔치에서 크게는 아니지만 조금 짜증을 냈었다. 막내 외숙부의 딸인 그녀는, 그녀에게는 큰어머니인 큰 외숙모의 생신 잔치에 아침부터 와서 일하는 자신의 어머니가 불쌍하다며 낸 짜증이었다. 지금은 우리 어머니가 외갓집에서 제일 어른이시고 그다음이 막내 외숙부와 외숙모이지만, 그때는 외갓집 친척 어른들 중에서는 막내이신지라 막내 외숙모는 큰집들의 일에 항상 새벽같이 가서 일하곤 하셨다. 외숙부나 외숙모는 모두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셨고, 지금도 그 예의를 잘 지키시는 점잖고 멋진 분들이시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귀여운 짜증에 더해 나는 늘 외숙모 댁에 와서 생일잔치를 한다며 쫑알거렸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께서 생일에 미역국을 안 끓여주신 적은 없다. 그게 유일한, 그리고 제대로 축하받은 생일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 아이들의 생일은 다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그리 서글프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선 생일을 음력으로 지키는 데다가, 내 생일은 음력 1월이라서 보통 2월 말에 있었다. 봄방학 기간이라 학교에 가지도 않아서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기도 어려웠다. 생일을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었고. 그렇게 축하도 선물도 없는 생일을 오랫동안 겪어와서인지 오히려 누가 생일을 물어오면 당황스럽다. 남자 친구가 있을 때에도 먼저 생일을 알려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연히 그와는 별자리가 같아서 어쩌다 보니 그가 내 생일을 알게 되었을 뿐. 다음 해 내 생일이 되기 전에 그와 헤어졌기 때문에 그에게서 생일 축하를 받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어느 순간부터는 생일에 내가 가장 사고 싶은 것을 사면서 나 스스로에게 생일 선물을 하기로 했다. 남들이 들으면 불쌍하게, 혹은 처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가 내 생일을 축하받지 못했다고 해서 타인의 생일을 챙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조카들의 생일을 챙겼고 그다음엔 손아래인 올케의 생일에 기프티콘을 보내면서, 이후에는 손위 자매들에게도 기프티콘을 매년 보냈다. 그 선물을 받은 형제자매들 중 한두 사람은 가끔 기프티콘을 보내주곤 한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내게는 상당히 많이 부담스러운 우리 집 맏이가 생전 축하해주지도 않던 내 생일에 케이크를 주문해 보냈다. 전혀 예상치 않은 그 선물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생일 축하를 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솔직이 그 케이크는 그리 달갑지 않았던 탓이다. 어느 순간부터 맏이에게서 무엇인가를 받으면 그게 갚아야 할 빚처럼 느껴지게 그럴지도 모른다. 이렇게 올해 생일에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가족들의 기프티콘이 이어져서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냥 예전처럼 쿨하게 아무것도 안 하면 좋겠는데. 생일 축하와 선물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이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과 상황은 상당히 불편하다. 그러니 내년 나의 생일에 우리 가족들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그냥 지나가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내가 매정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말했듯이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이전 25화 계몽사 한국현대동화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